‘한종선’ 선생님 마이데이 참관기 – 연대의 조건

진실의힘 자원활동가 박종민

여름비가 내리던 지난 7월 10일 저녁,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선생님의 마이데이가 조계사 템플스테이에서 있었습니다. ‘진실의힘’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하고서 처음 참관하는 것이었던 만큼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에 대해 약간의 기대와 함께 걱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부모님 밑에서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자란 제가, ‘살아남은 아이’의 지난날들을 감히 마주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마이데이가 마음 깊이 새겨진 고통이나 상처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자리라고들 하는데, 그런 뜻깊은 자리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에서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 그 곳에 있었다는 것과 아홉 살 어린 아이가 그 아픔을 오롯이 감내해야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인과 누나를 형제복지원에 맡겼던 아버지가, 자신을 언젠가 찾으러 와 집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 믿었던 그 사람이 정작 형제복지원에 힘없이 수용되어 있는 모습을 본 어린 아이의 당시 심정이 어땠을지 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고, 계속해서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행사에 참석 하신 다른 생존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그 곳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최소한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혔구나.’하는 생각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한종선 선생님의 마이데이와 이전 맘풀이 간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종선 선생님이 얘기하실 때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본인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복지원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 긴 투쟁의 이야기들을 담담히, 때로는 여유를 가지고 말씀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맘풀이 사례집을 볼 때면, 내적으로 치유가 아직 충분히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남에도 계속해서 후유증과 고통을 겪는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종선 선생님 역시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여전히 괴롭다, 자유롭지 못하다 말씀하셨지만 이전 분들과는 다른 차원의 안정감 내지는 평정심이 느껴졌고, 저는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무엇일까 이내 궁금해졌습니다.

한참 그 이유를 생각하던 저는, 그 답을 당일 한종선 선생님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찾았습니다. 이번 마이데이에는 그간 선생님의 투쟁에 연대했던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물론 한종선 선생님 개인적으로 워낙에 유머감각이 있으셔서, 말솜씨가 좋으셔서, 침착함이나 인내심 등이 좋으셔서 그렇게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한종선 선생님이 투쟁을 할 때 곁에 계주셨던 그 분들이 계셨기에, 그 분들과의 연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종선 선생님이 투쟁을 하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 많은 분들이 그 옆에 함께 하였던 것 자체가 미리 맘풀이의 역할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면서 저 역시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하고, ‘내가 과연 마이데이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을 점차 놓을 수 있었던 듯합니다. 왜냐하면 연대에는 어떠한 조건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그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같은 크기의 고통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날 한종선 선생님과, 그 자리에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이 알려주셨습니다. 섣부른 위로나 공감의 언사가 아닌, 묵묵히 연대를 해야겠다는 결연하고 성실한 의지만 있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런 자격이 자연히 주어질 수 있다고 마침내 알게 된 것입니다.

참관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던 것,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감추고 싶고, 여전히 아픈 이야기들일텐데도 용기내어 들려주셔서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말로만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천하는 진실의힘 활동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