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철(법학박사)

  1. 법학을 전공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법’이, 그리고 국가기관(안기부, 검찰, 법원)이 이렇게 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에 봉사하고 국민의 인권과 정의를 철저히 짓밟고 왜곡시켰다는 데에 경악했다. <진도간첩단 사건>은 워낙 유명하고 매스컴을 많이 탄 사건이라 나도 웬만큼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알게 되니 끔찍했다. 우리나라는 8.15해방 이후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법치주의를 구현하고 모든 국민이 국가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이 책의 내용은 소위 ‘진도간첩단’ 사건을 다룬다. 불법적으로 자행된 국가권력에 죽을 힘을 다해 법적으로 맞서는 (이 책의 주인공) 박동운의 이야기다. 그의 아버지 박영준은 6.25전쟁 당시에 행방불명이 된 상황으로 누구도 그 이후의 행적을 몰랐다. 살아있는지조차도. 그런데 그 박영준이 북에서 활동하고 있고 남파돼서 아들 박동운이를 두 번이나 데리고 월북해서 교육을 시키고 간첩 활동올 하게 했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박동운 집안 사람들이 모조리 잡혀가서 불법감금 당한 채로 고문과 폭행을 당하였고 간첩단으로 조작되었다. 안기부에서 그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하였다. 그 사건으로 가족 대부분이 1,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는다. 박동운도 1심에서는 사형판결을 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형 판결을 받는다.

2.내가 이 사건에 대하여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박동운의 작은 아버지, 그러니까 박영준의 동생인, 박경준의 딸 박미옥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박동운의 사촌 동생이다. 그녀는 광주에서 간호대학을 다닐 때 언론을 통해 자기 집안사람들이 간첩 활동을 해서 검거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아버지 박경준도, 어머니 한등자도 간첩으로 체포되어 고초를 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간호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했는데 아주 우연히 내 친구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내 친구는 그녀가 (조작)간첩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도, 장인어른이 될 분을 교도소로 찾아가 면회하면서 결혼 승낙을 받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 사연은 한겨레신문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이 책이 출판되었다고 한겨레신문에 간단히 소개되었는데 나는 이 사건과 사정을 미리 알았으므로 당장에 사서 읽었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다.

이 책에는 나와 관련된 얘기도 나온다. 박경준이 7년의 감옥살이 하고 나서 자기의 억울함을 이쪽저쪽에 적극적으로 호소하러 다녔는데 1988년 9월 3일에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형사정책학회에서 자기 가족들이 간첩으로 조작된 과정을 낱낱이 증언했는데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마도 한인섭 교수의 초청으로 간 것 같다. 그때는 그분이 내 친구의 장인이라는 것을 몰랐다. 박경준은 나름 계속해서 열심히 억울함과 죄 없음을 주장하고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무죄판결이 난 재심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1998년에 사망했다.

이 책은 고문을 통하여 조작되고 날조된 수사과정이 주로 소재이지만 나중에 감옥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나와서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투쟁을 하여 재심으로 무죄가 되고 헌법재판을 받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아 내는 과정을 소상히 서술하고 있다. 법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그 법령과 과정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익숙한 상황이라 절절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무난했지만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겠다.

3.나도 몇 번 소송의 당사자로서 법원에 오갔지만 내 경험상으로 느낀 것은 소송에서 승소하는 측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끈질기고 집요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 나오는 조작간첩 사건은 처음에는 안기부라는 국가권력이 아주 집요하게 사건을 조작하여 유죄판결을 이끌어냈지만, 나중에는 석방된 피고인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결국은 (이미 확정된 판결을 다시 판결하도록 하는) 재심을 통해서 잘못된 유죄판결이 무죄로 결판난다.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조용환 변호사의 집요하고 철저한 법적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분은 우리나라 법 역사상 처음으로 재심을 통해서 조작된 간첩 ‘함주명’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사였다. 조용환 변호사가 아니었더라면 저 사건뿐만 아니라 진도간첩단 사건의 재심과 무죄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사건의 무죄판결에는 물론 억울하게 간첩의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하고 석방된 후에 ‘나는 억울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모든 피해자들의 주장과 기여가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조용환 변호사의 결정적인 도움과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들의 민주정권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진실의 힘’ 재단과 장기수가족-고문피해자-양심수 가족들의 지원도 한 몫을 했다. 정혜신 박사 이름도 나오는데 그분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치료와 상담을 진행하였다. 그분은 쌍용자동차-용산참사 피해자들과도 함께 한 참으로 의(義)로운 분이다.

4. 문제는 특히 법원이다. 우리가 흔히 법원은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 관한 한 법원은 정의의 편이 아니었다. 이 조작간첩단 사건의 재판관에는 1심 김헌무 부장판사, 2심 이정록 판사, 대법원은 정태균, 윤일영, 김택주, 오성환 대법관들 이름이 나오는데 그들은 저 조작간첩단 사건의 방조자들이다. 시국 사건의 재판들에서 저런 판사들은 공안검사의 편에 서서 어떻게 하면 피고인들의 주장을 봉쇄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니 그런 불공정하고 엉터리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나마 민주정권이 들어서서 재심에서는 무죄판결을 얻어내는데 그때 조용환 변호사가 한 말을 읽으면서 (법학자인) 나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피고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박동운과 가족들의 분투에 감사해야 한다.”면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을 이겨내며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해온 이들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법조인들이 저지른 큰 오점을 일말이라도 씻어내고 법률가의 역할과 사명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돼서 피고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피고인들에게 감사해해야 한다. 이 사건 전후에는 간첩 조작 사건들이 많았는데 이 피고인들이 적극적으로 불법적인 수사와 관행, 그리고 재판의 문제점들을 체계적으로 문제 삼음으로써 그 이후에는 이런 불법감금과 적나라한 고문과 폭력 등의 불법 수사 행태는 상당히 없어졌을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문민정권이 들어선 영향도 있을테고. 김대중 정권에 만들어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했다.

나중에 조용환 변호사가 지적하였듯이 검사가 피의자들을 조사할 때 저 안기부 직원들이 조사실에 들락날락하면서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면서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바꾸지 못하도록 한 것은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검사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그때의 공안검사들은 안기부의 설계도에 따라 지휘하는 역할이었다고 하니 어찌 이런 일이? 이런 수사 관행에 따라 피해를 본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중에는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사도 증거능력이 제한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는데 이런 것도 다 많은 피의자들의 노력 덕분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검사들의 기소독점 권력의 남용과 관행과 악행이 쌓이고 쌓여서 그리고 윤석열의 딱 한방(!) 때문에 지금 이재명 정권에 와서 검찰청이 공중분해 되었다고 나는 본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딱 적당하다.

이 사건의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무죄판결이 나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는데 그 소송의 소멸시효 문제로 판결이 무효화되고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승소하였는데 그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을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법을 많이 배웠다는 법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 거리를 만들어 내다니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괴로웠겠는가?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검찰도 대법원도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법을 집행하였다니 법의 공정성을 저런 사법기관(검찰과 법원)에 어떻게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5. 이런 간첩단 사건이 발표되고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고 나면 그 가족들은 주변으로부터 많은 따돌림과 지탄을 받는다. 나중에 완전히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사건의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왕따를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여 정신적으로 고통과 피해를 입는다. 그런 사연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 박동운도 부인과 이혼을 하고 세 자녀와 결별을 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절망과 괴로움이 있었겠는가? 그래도 박동운은 재혼을 하고 아직까지 살아서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장도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전처 자식들과는 만나는지가 궁금하다. 만나면서 화목하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 사건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때에 간첩단으로 조작된 사건인데 그 고문을 행한 자들과 조력을 한 사람들은 나중에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위의 언급한 함주명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나중에 7년형의 감옥살이를 했는데 이 사건을 조작한 안기부 치안본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 고문한 사람 이치왕과 안강민 검사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았는가?

여기에는 안 나오지만 저렇게 간첩단을 적발(조작)한 공적을 세운 사람들은 오히려 그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훈장을 받고 승진을 먼저 하고 포상금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간첩을 만들어내려고 혈안이 되었다. 저 이근안도 옥조근정훈장(실형확정 후 취소) 등 16개의 상훈을 받았고 세 차례에 걸쳐 (공식적인 것만) 310만원의 포상금을 수령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아직도(지금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저런 (노골적인 불법적인 행태는 아니더라도)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사법기관은 국민으로부터 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권력-재판 기관들이 자신의 권위와 권력행사를 위하여 약자들에게 함부로 하는 경우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나와 있는데 그리고 모든 공무원들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고 섬겨야 하는데,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명제가 (이제 모든 방면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잘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6. 이런 책을 읽으면서 권력기관인 국정원-경찰-검찰-법원에 속한 사람들은 자성을 하고 다짐을 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국가폭력이 자행하지 않겠다는 다짐! 물론 선배들이 저지른 악행이고 흑역사이지만 저런 일을 또 다시는 저질러서도 절대로 안 된다.

이 책은 단순하게 보면 한 가족의 불행에 관한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 이래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국가권력의 독재와 불법적인 권력행사가 얼마나 많이 행하여졌는가?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간첩 조작 사건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일어난 많은 간첩조작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불행한 사건들이 이렇게 기록되고 계속 상기되어야만 그러한 비극적인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인 송소연은 현재 ‘진실의 힘’ 단체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데 그는 줄곧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단체에서 일을 했다. 이 책의 저자 송소연은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법적 소송에 관련된 것이다. 간첩사건의 1심, 2심, 대법원의 3심. 그리고 재심. 보호관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소멸시효 문제. 부당이득 반환 문제 그리고 헌법재판. 1981년 3월 7일부터 시작된 이 사건이 최종적으로 끝난 2023년 8월 14일까지 43년 동안의 19번의 재판 기록들이 알기 쉽게 꼼꼼하게 간추려져서 이 책에 들어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미 지나간 사건이지만, 산더미(!)처럼 많은 재판기록들을 이렇게 요약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 이다.

“무지막지한 국가폭력의 고통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끝내 이긴” 박동운의 삶도 거룩하지만, 그 사건을 이렇게 깔끔하게 기록하여 역사로 남기는 것도 나름 거룩하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저자의 마음속에는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과 사명감이 있었겠지.

그리고 대개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글재주가 없는데 송소연은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많은 사건들의 핵심을 간추리고 연결시켜 공감을 이끌어 내는 글재주도 뛰어나다. 이 책이 많이 팔려 송소연과 ‘진실의 힘’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춥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그런데 그 봄은 멀리서 힘들게 온다. 꽃샘 추위도 있다. 그렇게 온 봄은 찬란하다. 내년의 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것이 있다. 왜 그 먼 전라남도 진도였을까? 나의 고향 김포는 북한과도 가깝고 6.25전쟁 전후에 좌익들이 많았다고 들었었다. 내가 살던 동네 근처에는 ‘사우리’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마을에는 예전에 그 유명한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회택 선수가 자란 마을이다. 그런데 그 이회택의 아버지가 6.25전쟁 중에 자진 월북했다. 그것은 공지의 사실이었고 김대중 정권 때 이회택 선수는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었다. 이렇게 6.25전쟁 전후로 월북하고 납북되었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어찌, 왜 그 먼 진도에서 간첩단을 조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