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통해서 국가핵심기술을 보호하고자 했던 정보 비공개 조항이 오히려 한해 10만명 이르는 산업재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실현을 가로막게된 점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20대 국회 막바지였던 2020년 2월, 국회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박용진, 박정, 박홍근 등과 정의당 심상정, 윤소하 등 15명의 의원들이 2019년 8월 통과된 국가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이 법엔 기술 보호를 위해 국가 핵심기술 관련 정보는 공개 금지되고,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하면 처벌받도록 되어있다. 반도체 전자 산업, 바이오, 건설, 조선 화학산업 등 33개 분야, 3000개에 달하는 기술과 제품이 산업기술에 포함된다.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자들을 돕는 ‘반올림’은 삼성 반도체ㆍLCD 공장 내 유해물질 사용 및 노출실태에 관한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공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故 황유미씨를 비롯한 공장 노동자들에게 암 발생률이 높고 희생자들도 잇따르자,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작업 환경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되자 삼성 측은 “보고서 공개 논란이 입법적으로 해결됐다”고 나섰고, 서울행정법원도 비공개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사업장 노동자나 지역주민이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아도 회사는 문제가 되는 작업장 환경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공익문제 제기, 산업재해 인정 등은 그만큼 어려워지게 된다.

이런 법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시민사회는 대책위를 구성하여 이 법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찾아갔다. 항의가 거듭되고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나서야 국회의원들은 "그런 법인 줄 전혀 몰랐다“ 며 사과했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올바르게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2020년 2월, '삼성보호법'이라고 비판받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더 강화시키는 법안을 만들었다.

삼성을 더 보호하는 법?

2020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은 약속대로 산업보호기술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고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 역시 대상기관 동의 없이 산업기술을 사용·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생명·건강권 같은 더 큰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 규정도 없었다. 그동안 제기해온 시민사회의 우려와 지적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이 법안은 ‘삼성을 더 보호하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지난 12월 10일, 민주당은 이 법안을 폐기했다. 그렇게 이 논쟁은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마지막 국회에서 통과할 법안 목록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특별법’)이 있다. 이 법은 "국가핵심전략기술"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이름부터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제도와 비슷한데, 지정 절차나(산기법9조, 특별법11조) 기술 침해행위를 규정하는 방식도(산기법14조, 특별법15조) 매우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이 특별법으로 지정된 '국가핵심전략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로 간주된다고 했다(특별법11조7항) . 2019년 '삼성보호법'으로 도입된 모든 독소조항들이 이번 특별법상 '국가핵심전략기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 활용 범위가 크게 넓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정보의 제공 목적외 사용 행위에 대한 처벌수위는 더 높아졌다(산기법 36조 4항, 특별법15조8호및50조 3항).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 뿐 아니라 "국가핵심전략기술 관련" 정보 또한 모두 합법적으로 은폐되고 만다. 그 정보의 은폐가 사람의 생명ㆍ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국가핵심전략기술을 포함한" 정보를 제공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ㆍ공개하면 무거운 형사 처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까지 당하게 된다. 정보 공개 우려만 있어도 정보수사기관의 조사 및 조치가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소송에서 취득한 자료를 통해 어떤 사업장의 중대한 문제를 알게 되어 이를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해 공개하려 할 때도, 이처럼 무거운 민형사상 책임을 감내해야 한다.

더욱이 그 기술 "관련 정보"가 무엇이며 그 기술이 "포함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이유 불문 은폐되고, 이유 불문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정보의 범위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정하는지 알 수 없다. 결국 그 기술을 보유한 사업주가 은폐하고 싶은 모든 정보들이 곧 "관련 정보"와 "포함된 정보"가 되고 말 것이다.

반올림
2017년 고 황유미씨와 산재산업노동자 추모 행진

노동자의 생명과 환경,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의 요건

국회는 문제가 된 산업기술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제정 이유를 반도체 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라고 답했다.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기업을 육성하고 기술을 개발·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화려한 첨단전략산업의 이면엔 직업병 피해자가 속출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무시되는 비참한 현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틀어막는 방식으론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진실을 더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인류사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올바른 길이다.

글. 김정은 (진실의 힘 출판연구팀장) / 감수 임자운(변호사, 반올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