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아디
코로나 이후 2년 6개월만에 출장을 다녀온 방글라데시 로힝야 캠프. 지난 5년간 함께 해 온 반가운 얼굴을 보니 오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다.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수줍은 미소가 만연하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캠프 생활을 들었다.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지내는 캠프에는 철장이 둘러쳐졌다. 출입 통제까지 받다 보니 난민들은 캠프가 열린 감옥이나 다름없다며, 미얀마 상황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구호단체의 식량 배급으로 근근히 연명하고 있지만, 생활은 점점 더 곤궁해지고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과 홍수 그리고 계속되는 빈번한 화재, 인신매매와 마약 밀매 문제까지…점점 더 열악해지는 캠프 환경 속에서 난민들은 벌써 5년 넘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심리적으로도 점차 피폐해지고 있다. 이제는 범죄집단이 된 무장단체들이 캠프 안에서 세력 다툼까지 하면서 난민들은 살해 위협, 피살, 금전 갈취 등을 당하며 그야말로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깊은 한숨 사이로 이들은 “국제재판절차 진행 상황이 어떤가요?”, “언제쯤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물었다.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음이 죄송했다.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계속 견뎌내고 준비해야 한다는 말 외에는 더 나은 위로를 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두 달 뒤 한 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 분의 마지막 모습은 영정사진이 되어 마음에 새겨졌다.
오랜만에 대면한 로힝야 생존자들로부터 들은 말은 고맙다는 것이었다. 잊지 않고 찾아 주고, 한결같이 함께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일해주는 ‘진실의 힘’이, ‘광주인권평화재단’이, ‘아디’가 감사하단다. 지난 5년간 세 단체는 로힝야 집단학살 기록사업에 진심이었다. 40개 마을에서 1,000명 넘게 인터뷰하고 기록을 정리, 보전하고 있다. 2022년에만 5개 마을의 약 120명을 인터뷰했다. 2018년부터 함께 해 온 6명의 로힝야 기록활동가가 주도한 성과다. 집단학살로 시민사회가 파괴됐고, 국제사회의 정의 프로세스는 당장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또 언제 가능할 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했기에 누군가는 기록을 시작해야 했다. 소외 없이 가급적 모든 피해 마을의 증언과 증거를 기록해 하나의 실체적 진실을 이루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유엔과 국제 엔지오들은 마을별 접근과 기록에는 관심이 없었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제형사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재판절차조차도 특정 소수의 심각한 케이스만 다루고 있는 상황이라 200여개 마을에서 발생한 집단학살 기록은 요원한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세 단체가 이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캠프에서의 기록작업은 이제는 모두 로힝야 출신 기록활동가들이 수행하고 있다. 지난 60년간 박해와 집단학살을 받아온 피해자이면서 생존자인 6인. 이들은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이지만 인터뷰 활동에 필요한 기초 소양이 처음부터 준비되었던 것은 아니다. 인권개념, 인터뷰 이론과 요령 실습, 증거수집의 원칙 및 기록 방식, GPS를 통한 위치정보 파악방법, 인터뷰 질문지 작성, 인터뷰 대상자 선정 방법, 증언 녹취록 작업 방법 등에 대해 지속적인 훈련을 해 왔다. 2021년부터는 ‘로힝야인권센터’라는 이름으로 반지하조직처럼 활동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어렵고, 오히려 신변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2년전 비슷한 활동을 했던 로힝야 활동가가 총격을 받아 살해된 사례가 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기록 활동을 하는 데 위협요소가 많다. 감시를 항상 염려해야 하고, 휴대폰, 노트북 등 검열과 수색에 대비해 보안에 철저히 신경쓰고 있다.
진실의 힘과 함께 한 2022년은 두 가지 이유로 특별했다. 첫째로 캠프 내 현재 인권상황에 대해 기록하고 캠페인을 벌였던 점이다. 캠프 내 교육권 실태를 조사하면서 활동가들은 설문조사지를 직접 작성하고 1,000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또 심층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하고, 교사, 부모, 아동 등 총 45명을 인터뷰하고 녹취록을 작성했다. 아디와 공동으로 이를 분석해 보고서를 집필해 발행했다. 조사 보고서에서 학력 인증이 안되고 있는 캠프 내 교육의 문제, 교사의 낮은 질적 수준, 배제되고 있는 여학생 교육기회 제공의 필요성, 국제적인 교육지원 기금의 심각한 부족 문제를 다뤘다. 나아가 현지에서 캠프 내 로힝야 난민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청원캠페인을 벌여 약 18,000여명이 참여한 성과를 냈고, 이를 바탕으로 유엔특별절차, 방글라데시 정부, 미얀마 NUG 등에 진정 및 공식서한을 보내 개선을 촉구했다. 일부 국제언론에 관련 보도자료를 로힝야인권센터 명의로 발송했다.
두번째는 여전히 심각한 미얀마 라카인주의 로힝야 인권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2022년에는 쿠데타 세력과 아라칸군의 충돌로 인해 로힝야들은 이중의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힝야 인권실태는 국제사회와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다. 최신의 소식이 외부에 잘 공유되지 않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많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인권상황 기록 활동은 로힝야 거주지역에 살고 있는 자원활동가 10명이 수행하고 있는데, 2022년에는 모니터링을 상시 수행했고 브리프를 발간하여 유엔특별보고관에게 전달했다. 개별 인권 사안 55건에 대해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외부와 공유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계도 많다. 로힝야 기록활동가들의 역량은 더 증대되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한 조언과 지원이 필요하고, 캠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활동비, 운영비 등 조직 운영과 관련한 전반적인 지원이 여전히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자립할 수 있도록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2022년 교육권 실태조사 등의 과정에서 했던 것처럼 먼저 스스로 토론하여 결정하게 하고, 이 과정에 개입해서 다시 한 단계 질적 수준을 높여내고, 실행도 함께 하는 긴 프로세스가 여전히 필요하다. 성장은 더디다. 이들의 수준과 국제사회에서 신뢰받을 수준의 방법론 설정, 이행, 결과물 도출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을 더 해야 한다.
로힝야 활동가들에게 기록활동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다. 처지도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더 절실하다. 이들은 그렇기에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도, 캠프의 상황이 열악하더라도, 충분한지 못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무엇보다 자신들의 업이자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캠프 내 사람들의 바람과 다르게 세상은 다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희망을 쌓았다. 6인의 기록활동가들이 희망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기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고, 5년간 해온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5년은 이제 성과를 바탕으로 실력과 자신감을 키워, 점차 독립을 준비해 가면 된다. 서두를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자리에 함께 해주면 된다. 이게 가장 어렵다. 그래서 두려운데, 혼자가 아니라면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