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
수용시설은 감금과 격리의 역사
시설은 1950년대 국가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규정한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국가는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설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투여하면서 규모가 점차 확대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설은 사회복지제도가 변화하는 시점에 따라 ‘전쟁고아 수용소’에서 대규모 ‘장애인 거주 시설’로, 또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주택 운영자’로 빠르게 탈바꿈해왔다. 왜냐하면 국가가 ‘정상적인’ 인구에서 벗어난 이들을 사회로부터 분리, 배제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시설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복지정책에 따라 교묘하게 형태를 달리하며 국가와 ‘이익’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시설을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기조는 강제수용과 감금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비정상'으로 분류된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수용시설은 여전히 유효한 장치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역사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용시설이 물리적 장소로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시설 안과 밖에서 관계와 자원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시설화는 지배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 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회와 분리하여 권리와 자원을 차단하며 ‘불능화, 무력화’된 존재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 2017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 내 거주하는 공간에 3명에서 5명이 거주하고 있는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52%, 6명 이상 거주하고 있는 비율도 36%가 넘었다. 집단적으로 수용되어 있는 시설 안에서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상 전체가 드러나는 삶이 시설이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통제와 감시가 유용한 구조인 것이다. 또한 이들이 매일 약을 먹는 비율이 61%로 나타나고 있으며 거주인 중 상당수가 만성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시설에서는 거주인의 ‘건강관리’를 이유로 ‘통제’를 정당화하지만, 실제로 평소 먹는 약을 의사로부터 수령하지 않았거나 무슨 약인지도 모른 채 먹고 있는 경우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2 대다수의 거주인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은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관심을 두고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물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예방 차원으로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처럼 국가 주도하에 시설화되어 온 폭력적인 역사를 끊어내기 위해 감염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시설의 존재가 보호가 아닌 감금과 격리의 역사 그 자체임을 명백하게 드러내야 한다.
‘코호트 격리’는 '생명을 포기'하는 시설사회의 발현이다
올해 2월, 청도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이후 정신병원, 요양시설, 장애인거주시설 등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국가는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대책으로 ‘예방적 코호트 격리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 의미 그대로 국가가 집단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선제적으로 격리하는 예방대책이다. 「사회복지시설 대응 지침」에 명시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리두기 2단계의 경우 시설의 ‘외출, 외박, 대면, 면회’가 금지되고 2.5단계의 경우 ‘외부 출입 인원 통제’가 추가된다. 그러나 시설 거주인의 외출을 가로막는 것은 예방적 코호트 격리조치 때문이 아니며(이들을 막는 것은 거리두기 방역지침만은 아니다.), 그동안 시설의 문이 활짝 열려있어도 이들은 시설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시설 밖으로 나오려면 시설의 허락과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시설의 일정이 최우선 시 되기 때문에 개인이 나오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시설 안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이들에게 ‘코호트 격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을 가르지 않는다. 국가가 이미 이들의 삶을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관계와 정보들로부터 단절되어 왔는데 무엇을 더 ‘격리’하겠다는 것인가.
시설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나서 시설을 나오지 못하는 이유, 건물에서 방 안으로 갇힌 이유를 질문했을 때 ‘장애인이 감염병에 취약해서’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런데 단지 ‘장애인’이어서 감염병에 취약한 것이 아니라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집단 감금하는 시설의 구조가 감염병에 취약한 것이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지난 12월 말 서울시 송파구의 장애인 거주시설 신아원에서 70여 명의 거주인과 종사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시설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에 서울시는 ‘코호트 격리’되어 확진자와 비확진자가 시설에 수용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하여 ‘긴급 탈시설 이행 촉구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코호트 격리 원칙을 폐기하고 긴급 분산조치 실행 지침을 마련할 것, ‘긴급 분산조치’ 기간에 장애인거주시설에 집합금지 명령 수준의 지침을 적용하고 거주인이 다시 시설로 돌아가지 않도록 긴급 탈시설 방안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3
‘코호트 격리’는 방역대책이 아니다. ‘코호트 격리’는 시설을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의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하는 방침이다. 코호트 격리로 장애인 거주시설에 감금되었던 국가 사회복지정책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억압받았던 이들의 삶이 처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감금되었던 사람들에게 추가로 코호트 격리 조치를 하는 것은 K-방역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이다. K-방역 자부심이 코로나19가 시작된 시기에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시설이 감염병이 확산될 위험도가 높은, 안전하지 않은 구조임을 충분히 경험했다. 더 이상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는 시설을 즉각 폐쇄하고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주요한 방역지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각주
- 조미경(2020), 「장애인 탈시설 운동에서 이뤄질 ‘불구의 정치’ 간 연대를 기대하며」, 시설사회, 와온, 95쪽.
-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 2017.11.30.
- 비마이너, 신아원 확진자 61명으로 증가… 장애계 “중대본, 코호트 격리 중단하라”, 20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