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펴낸 세월호참사 특조위 조사관 박상은씨 인터뷰… “원인 조사보다 처벌에 초점 맞춘 수사로 종합적 원인 밝히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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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4월16일 아침, 전남 진도군 조도면 인근 해상날씨는 맑고 바다는 잔잔했다.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6800t급 카페리선 세월호에서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로 다급한 조난신고 전화(오전 8시52분)가 걸려왔다. 최초 신고자 학생의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했다.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에는 승객들의 구조 요청 전화가 그 뒤로도 오전 9시23분까지 18차례나 빗발쳤다.
오전 9시30분이 지나 목포해경 헬기와 연안경비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모두가 기대한 희소식은 없었다. 오전 10시17분,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열일곱 살 아이의 휴대전화 문자를 끝으로 세월호와 세상 사이의 연결이 끊겼다. 오전 10시30분, 세월호는 거꾸로 뒤집힌 채 가라앉았다. 탑승자 476명 중 사망 304명, 실종 10명. 희생자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남녀 학생 250명도 포함됐다. 텔레비전 생중계 뉴스를 가슴 졸이며 지켜본 국민은 탄식했다. “이것이 국가인가?”
#2. 2022년 6월9일 오전 서울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출범했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3년7개월간의 활동 종료를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호승 사참위 위원장은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 못한 점 (…) 피해자와 국민께 다시 한번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참위가 2022년 9월10일까지 발간할 종합보고서의 초안에는 “(내인설과 함께) 외력 가능성도 조사했으나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문구가 담겼다.
세월호 침몰의 진실은 이대로 미궁에 묻히는 걸까? 일부 책임자 처벌과 유가족 보상으로 국가의 책임은 끝나는 걸까? 앞서 2015~2016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으로 활동한 박상은(39)씨의 질문은 한발 더 나아간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조사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 건 아닐까? 그는 세월호 조사 과정을 되짚고 재난 조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결과를 새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진실의힘 펴냄)에 담아냈다. 책에는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이란 부제가 달렸다.
현재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는 박씨는 앞서 2018년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와 2022년 봄 사참위의 종합보고서 집필진으로도 참여했다. 2022년 7월5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조사위원회 활동과 성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2015년 1월~2016년 9월(1년9개월), 종합보고서 작성 실패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2017년 4월~2018년 8월(1년5개월), 종합보고서 2개 작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2018년 12월~2022년 6월(3년7개월), 종합보고서 작성 중
3개 조사위, 7년 조사하고도 원인 못 밝혀세월호 참사 조사는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8년 넘게 이어졌다. 사고 다음날 검찰은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꾸렸다. 2015년 1월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법에 따라 특조위가 출범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재난사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위원회 구성은 처음이었다. 특조위는 2016년 9월까지 1년9개월간 광범위한 조사 활동을 했지만 종합보고서를 내지 못했다. 특조위는 230개가 넘는 유가족 신청 사건을 하나의 조사 방향으로 구성하지 못했고, 이를 종합해 유의미한 조사 결과를 도출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해 겨울, 한국 사회는 ‘박근혜 정부 퇴진’ 촛불집회와 이듬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라는 격랑을 넘었다.
2017년 4월에는 선조위가 2018년 8월까지 1년5개월간 침몰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합보고서가 각각 ‘내인설’과 ‘열린 안(외력설)’을 담은 두 가지로 나뉘어 나왔다. 이어 2018년 12월에는 사참위가 구성돼 2022년 6월10일까지 3년7개월 동안이나 조사를 벌였지만 역시 명확한 결론 도출에는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의 긴 과정이 일단락됐다. 30대 청년 시절의 대부분을 여기에 깊게 관여했는데, 감회가 어떤가.
“충분한 시간과 인력이 주어졌는데도 뚜렷한 성과와 결론을 내지 못해 심리적 압박이 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피해자 유가족들이 ‘이젠 사람들이 우릴 잊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조사위 종료 이후 세월호의 기억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중요하다.”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은 사참위 이전인 특조위와 선조위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사참위 활동까지 끝난 시점에서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나.
“특조위와 선조위의 경험을 보면 이후 사참위가 어떤 유산을 갖고 활동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앞선 2개 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사참위도 법률가 중심으로 구성된 것부터 한계를 예고했다.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해선 공학자, 선박 기술자, 정책 전문가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성이 필수적인데 특조위의 경우 전체 위원 17명 중 15명이 법률가였다. 사참위도 현재 위원 6명 중 5명이 법률가다.”
2022년 6월9일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 종료를 하루 앞두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 있는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전 희생자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조사위 다수가 법률가로 구성된 한계”그게 왜 문제가 되나.
“대형 재난사고는 몇몇 소수의 잘못이라기보다 수많은 안전망과 규제가 다 뚫리고 위험 요인이 축적됐다가 어느 순간 ‘트리거’(결정적 계기)가 촉발돼 일어난다. 그런데 사법적 관점의 조사는 법적 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다. 책임 소재만 따지다보니 사고의 복잡한 인과관계가 단순한 선형으로 직결되고, 결국 일선 말단의 실무자만 처벌받고 윗선은 책임지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적절한 책임 배분이 왜곡되는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사법적 원인’ 규명과 ‘구조적 원인’ 규명의 상충을 난제로 꼽은 것과 관련 있나.
“그렇다. 사법적 조사에 치중하면 사고를 책임져야 할 ‘국가’를 인격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정인을 책임자로 지목해 처벌하려는 욕구가 압도하는데, 이는 처벌 당사자가 아닌 모든 사람의 책임을 면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진정한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해선 사고의 기술적·조직적·역사적 원인을 고루 살피는 구조적 조사를 해야 한다.”
책에서 ‘조사와 수사의 분리’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재난 조사가 발달한 나라들에선 그런 원칙이 확고하다. 재난조사기구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 규명에 집중하고, 법률 위반이나 특정 행위자의 고의성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에 넘긴다. 사법적 조사는 구조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한다. 그러면 조사기구들의 권위가 커지고 증언이 오염되지 않는다. 사법적 조사의 개시 시점도 중요하다. 한국은 검찰이 사건 직후부터 수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법 조사는 책임자 처벌이 목적이다. 그래서 중요한 증인들이 진실을 말하기를 꺼리는 ‘위축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면 곧바로 진실은 사라지고 책임은 흩어진다. 조사기구는 기술적·구조적 조사에 집중하고 결함이 발견되면 그 책임의 배분에 대한 의견까지 내야 한다. 그것이 사법적 판단은 아니다.”
“세월호와 비교된 미국 컬럼비아호 사고”적절한 외국 사례가 있나.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조사 때도 사회적 지위가 낮은 실무자들은 증언에 따른 처벌이나 해고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조사위는 그들이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질문을 섬세하게 구성했고, 고위층 책임자 조사에선 도쿄전력 사장과 간 나오토 전 총리까지 청문회에 불러 세웠다.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폭발해 승무원 7명이 모두 숨진 사고의 조사는 재난에 대한 이해와 대응을 진전시킨 사례다. 컬럼비아호는 발사 과정에서 연료탱크 외벽의 단열재 한 조각이 떨어져 날개에 손상을 줬는데 우주 임무 수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조사위는 컬럼비아호 이전에도 단열재 타격이 종종 있었는데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실을 밝혀냈고, 그걸 왜 위험신호로 간주하지 않았는지, 같은 문제가 왜 반복됐는지, 조직문화의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거슬러 올라가며 확인했다. 이 과정을 거쳐 조사위는 종합보고서에 백악관과 의회의 책임까지 명시했다.”
세월호 참사 조사에는 이런 방식이 없었나.
“그게 아쉽다. 한국에서 재난 조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세월호 참사는 결정적 트리거가 무엇이든 평형수 부족과 과적에 따른 ‘복원력 상실’이 전복과 침몰의 근본 원인이다. 선원의 조타 실수이든,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든, 외력이든 기술적 조사 결과를 확정한 뒤, 복원성을 침해한 운항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전례와 제도와 조직적 원인을 밝히고, 사법적 조사는 검찰에 넘겨야 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충격이 워낙 커서 처음부터 책임자에 대한 분노와 처벌 요구가 분출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응도 화를 키웠다. 검사 출신 김기춘 당시 국무총리와 여당은 세월호 진상 규명 요구를 공안 사건 다루듯 했다.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한 유가족’을 구분했고, 국군기무사령부는 유가족을 사찰하기까지 했다. 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에 진영 논리가 덧씌워지면서, 구조적 원인 조사에 전념해야 할 특조위에 사법적 조사 요구까지 몰리게 됐다.”
“규제 기관이 기업에 포획된 것도 원인”세월호는 선박 안전에 관한 여러 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 책임을 기업활동의 부당한 규제와 침해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데.
“대형 재난사고는 국가와 기업의 책임이 연결돼 있다. 위험과 재난 예방의 핵심은 위험 통제, 즉 규제다. 그런데 선진국의 기업 자율규제 개념이 국내에선 왜곡되는 것 같다. 위험 통제는 사업장들의 상이한 특성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가 있을 테다. 이걸 정부가 일일이 지정하지 못하니 큰 틀의 지침만 주고 구체적인 안전기준과 예방책은 기업이 정하도록 하는 게 자율규제다. 한국에서 자율규제는 마치 기업이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율성이 커지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국회조사위원회가 ‘규제 포획’을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짚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규제 포획이란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인 기업에 역으로 포획돼 기업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는 현상을 말한다.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재난사고에 대한 시각과 사후 대응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규제와 안전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낳은 인재’라는 말까지 나왔고, 대다수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책감을 안겼다. 가장 중요한 교훈을 든다면.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자본과 기업에 대한 통제를 외면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치명적 결과를 보여줬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나라가 돼야 한다’는 사람들의 다짐은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교훈은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