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가 또다시 국회 고공으로 올랐다.
2017년 11월 7일 시작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노숙농성은 오늘로써 909일째다. 농성 2주년이던 지난해 11월 최승우는 국회의 과거사법 개정 통과를 외치며 국회의사당역사에 올랐고 24일간 단식농성 후 의식을 잃고 실려 내려왔다. ‘최선을 다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국회의원들의 말과는 달리 20대 국회는 5월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최승우가 국회 앞에서 안으로 들어오고, 땅에서 고공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 52살인 최승우의 삶은 기나긴 길 위에서 보낸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느닷없이 길에서 붙잡혀서 길바닥에서보다 못한 인권유린을 겪었고, 다시 나온 사회에서는 어떤 사회적, 법적 안전망도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짐승에서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은 국회 앞 시위를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국가로부터 구타와 감금, 강제노역, 성폭행, 타살, 암매장이라는 반인권적인 참상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를 받아내고, 그 실상을 낱낱이 알고 싶었다. 그동안 최승우를 비롯한 피해생존자들은 삭발과 노숙 농성, 고공 단식을 불사했다.
19대 국회 개원 당시부터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피해생존자들은 과거사법 개정을 소리 높여 외쳐왔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도 답하는 듯했다. 문재인 정부 5개년 100대 국정과제의 세 번째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과거사 문제 해결’이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형제복지원 사건의 국가책임을 밝혀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피해자들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했고,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재판에 대해 대법원에 비상상고도 했다. 올해 4월 부산시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피해자 심층 인터뷰 과정에서 당시의 참혹한 인권유린과 원생들의 죽음이 세상에 또 한 번 알려졌다. 그러나 왜 무고한 시민들이 끌려가서 강제 수용되어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는지, 누군가는 어떠한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진상규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거사법이 개정되어 과거사위원회가 설립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은 매번 눈앞에서 좌절됐다. 과거사법은 ‘현안이 아니’라며 매번 뒷전으로 밀렸다. 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당의 반대로 좌절될 때마다 여당은 여야합의를 통해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피해생존자들에게 약속했다. 과거사법은 지난해 9월 천신만고 끝에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하여 법사위와 본회의도 문제없이 통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당시 여야 간의 대립이 매우 격렬한 상황이었지만, 패스트트랙을 통해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 소방법, 추경안 등이 차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로지 과거사법만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야당의 반대가 있었더라도 여당의 '의지'가 있었다면 과거사법을 통과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여당’이 출현한 21대 국회도 다르지 않다. 이는 최승우 씨가 다시 국회의 높은 곳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 이상 기약 없이 기다리라는 말과 약속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
최승우 씨가 국회 의원회관에 오른 5일은 어린이날이다. 가족의 손을 잡고 국회 앞마당에 나들이 온 아이들과 아슬아슬한 국회 의원회관 고공에 오른 최승우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대비된다. 1986년 4월, 중학교 1학년이던 최승우 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경찰관의 손에 붙들려 형제복지원으로 납치되어 끌려갔다. 4년 6개월간 수용되는 동안, 남동생도 끌려왔고 그의 가족은 파탄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행복해야 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 왜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거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야 했는지 말해달라”는 요구에 국가는 분명하게 대답해야 한다. 국가에 의한 폭력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1980년대 독재정권 시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가족의 울타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랑인’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이들의 목소리는 2020년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국회는 더 이상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마라.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는 주는 것이 국회의 책무이다. 이제는 가진 것이 몸뚱이 하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기에 다시 더 높은 곳에 오를 수밖에 없는 피해생존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라. 20대 국회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어떠한 변명도 내세우지 말고 과거사법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라.
2020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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