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진실의 힘 이사장 박동운입니다.

일상의 균형이 무너져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가 조심스럽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전염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이들이 제일 먼저 고통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거짓과 혐오, 증오와 적대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염병의 전파를 기회 삼아 빠르게 증식하고 진화하는 이 바이러스는 전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려는 노력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성과 양심에 기초한 개개인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시민들 사이의 신뢰와 연대의 기초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고 심각합니다.

전염병의 위협, 거짓과 혐오, 증오와 적대의 선전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맞물려 가장 약한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모습은 국가폭력의 작동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간첩 조작 피해자들의 정신과 육체를 직접 파괴한 것은 고문과 폭력이었지만 권력과 언론이 결탁해 퍼뜨린 가짜뉴스와 흑색 선전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과 공포, 적대와 증오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두고두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삶을 무너뜨리고 괴롭혔습니다.

인간의 몸을 오염시키는 전염병 바이러스와 인간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거짓과 혐오, 적대와 증오의 정보 바이러스가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회를 좀먹어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진실의 힘'이라는 언어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진실'은 연약하고 오염되기 쉽습니다. 쉽게 모욕당하고 난도질을 당합니다. ‘간첩’으로 날조된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증거를 찾아내고, 거짓 증언과 증거 조작을 파헤쳐 재심을 청구하고, 무죄를 받아내는 지난한 싸움을 거쳤듯이 거짓과 혐오, 적대와 증오에 맞서야만 진실을 지키고 밝힐 수 있습니다. 피해자와 손을 잡고 함께 싸우는 과정이 바로 진실입니다.

2020년을 맞아 진실의 힘은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 ‘과거’에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받은 우리가 만든 진실의 힘이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더 낮은 곳을 찾아 손을 내밀고자 합니다. 그런 곳에 진실의 힘의 미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봄꽃이 필 무렵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후원회원님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공간을 새롭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원회원님들과 더욱 긴밀히 소통하며 진실의 힘 활동에 대한 후원회원님들의 참여를 확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를 갖고 지켜보며 더 많은 조언과 참여로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뒤늦은 인사를 보내면서 몇몇 분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진실의 힘 설립자이기도 한 안교도 선생님은 오늘도 가게를 여셨습니다. 대구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안 선생님은 연세가 많아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니 당분간이라도 가게 문을 닫고 쉬시라는 주변의 성화에도 평소와 똑같이 가게를 열고 닫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쌀을 사려는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846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최승우 선생도 잊을 수 없습니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등 사회복지 시설에서 자행된 강제수용과 대규모 인권유린은 ‘과거’의 피해자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동료 시민을 위해서도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코로나 19 사태 초기에 최승우 선생이 예견했듯이 청도 대남병원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태는 형제복지원이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진실의 힘은 이 분들의 손을 더욱 굳게 잡고 진실을 밝히는 날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진실의 힘이 지난 10년간, 다소 둘러 가고, 때로 비틀거리기도 하면서 '진실'을 향한 여정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진실의 힘을 믿고 함께 해 주신 후원회원님들 덕분입니다. 진실의 힘의 그 힘을 바탕으로 제도적 폭력, 구조적 폭력에 맞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자산을 남기겠습니다. 후원회원님들의 건강을 빌며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