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힘 창립 때부터 손과 발, 온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는 유현미 회원이 겨울,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도시 텃밭 농사 이야기를 텃밭 시 그림책 <아그작아그작 쪽 쪽 쪽 츠빗 츠빗 츠빗>에 담아 냈습니다. 유현미 회원님으로부터 텃밭 농사로 책을 지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텃밭은 기후 재난의 현장이에요. 작년 봄에 비가 얼마나 안 왔는지,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통은 잘 알기 어려운데, 텃밭을 하면 절로 알게 돼요. 작년 봄에 두 달 넘게 비가 안 왔어요. 인간이 아무리 물을 열심히 줘도 비가 제때 안 오면 심은 것들이 제대로 못 자라요. 맥을 못 춰요. 상추씨 심었는데 상추가 한 달 만에 나왔어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더 야생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지금 시대에 야생이 어디 있나’라고 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텃밭에 야생이 있어요. 텃밭은 묘한 장소예요. 인간의 인위적인 노동이 개입되는 곳이면서도 흙이라는 품 안에서 작물은 물론 자연과 야생이 함께 피어나니까요. 풀이 절로 나고, 셀 수 없는 곤충들이 오고, 땅강아지 같은 땅속 생물도 살고. 그런 걸 볼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해지죠. 마음은 촉촉해지고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한 뙈기 땅, 텃밭에서 만날 수 있어요.

텃밭 농사는 재미있고 힘은 조금밖에 안 들어요. 면적이 그리 크지 않으니까 친환경적으로 지어도 될 텐데, 그 작다란 땅도 새까만 비닐 멀칭이 기본이에요. 비닐 씌우지 말자고 할 수도 없고. 살충제 같은 것도 많이들 쓰시고. 이맘때 봄 농사 시작할 때 텃밭 농장에서 우리 텃밭 위치를 찾기는 아주 쉬워요. 다른 텃밭들은 거의 다 비닐 멀칭을 해서 온통 까만데, 우리 밭만 땅색 그대로 있어서. (웃음)

텃밭 일지를 써요. 농사 기록이죠. 그림은 가능하면 그때그때 그리려고 하지만 쉽진 않아요. 시간이 모자라서! 텃밭에서는 그 작은 땅인데도 뭔 할 일이 그리 많은지. 마음이 동할 때 바로 그리지 않고 사진 직은 것을 보고 나중에 그리면 뭐랄까. 그림의 맛과 멋이 많이 달라져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놓칠 때가 많으니까. 그러니 제가 지은 책은 모자란 책이에요. 다만, 뒷북 치듯 정성을 다해 만들어요. 내가 꿈꾸는 최상의 책은 영원히 못 나오겠지요.

이 책에서 흙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작가의 말’에 쓴 글을 옮겨 볼게요. “진실을 말하자면 그림책 짓는 것보다 텃밭 김매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내가 돌본다고 하지만 내가 보살핌을 더 받는 곳. 작으나 큰 땅, 텃밭. 흙에 발을 디디고 몸을 움직여 밭일을 하다 보면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절로 알게 된다. 본디 모습인 흙 인간으로 복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