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힘> 앞으로 책 한 권이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강남규, 한겨레출판). 우리 시대 시민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는 이 책은 2019년부터 2021년 초까지 경향신문, 미디어스 등에 연재한 저자의 칼럼을 묶은 책입니다. 책 제목도 흥미롭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저자와 편집자입니다. 저자 강남규, 편집자 김경훈.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사람은 ‘진실의 힘’ 회원입니다. 그것도 보기드문 청년 회원. ‘진실의 힘’이 젊은 세대에게 한발 다가가는 마음으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Q. ‘지금은 없는 시민’ 이라는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요. <지금은 없는 시민>을 기다리는 것인가요? 아니면 두 분이 그런 시민이 되고 싶은 건가요?
강남규 : 좋은 시민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은 정말 하염없는 일이죠. 우선 제가 먼저 그 시민이 되고, 아직 그 시민이 되지 않은 다른 시민들에게 ‘나와 같이 시민이 되자’ 라고 말하는 게 제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야기에요. 그래서 제 칼럼은 비판적 관점보다는 설득적 관점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연대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지금 제가 하는 생각이나 어떤 다짐이에요.
김경훈 : 저는 남규씨의 글에서 ‘후원과 참여가 감시와 투명성을 재고하는 길이다’ 문장에 크게 공감했어요. ‘지금은 없는 시민’ 이라고 제목을 잡은 것도 비평하는 사람은 참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거든요. 멀찍이 떨어져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팔짱만 끼고 비평을 한다고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것이 시민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힘이 아니라고 봐요, 시민사회에 직접 참여하면서 비판하는 것이 더욱 건강한 힘이라고 봐요.
- 제목도 제목이지만, 그 옆에 적힌 부제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냉소와 치기’는 20대가 가진 특권 아니던가? 더구나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자)들의 586세대와 페미니스트에 대한 분노가 지난 재보궐 선거의 판도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대남’과 어울리지 않는 이 착한 부제는 어떻게 붙이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Q.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라는 부제는 어떤 의미인가요?
강남규 :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손절’(손절매, 손해를 감수하고 매도한다는 증권 용어. 요즘은 ‘관계를 끊다’ 라는 의미로 많이 쓰임) 해 버리는 또래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의 운동이 될까? 우리가 운동하는 건 저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하는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내 옆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바꿔내는 게 내가 운동하는 목적이라서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김경훈 : 어느 분께서 부제를 보고, 굉장히 뭔가 치열하게 희망을 만들려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제 의도를 읽어준 것 같아서 고마웠어요. 저는 치열하지 않은 희망은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떤 문제를 깊게 생각하고, 그 속에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지만, 거기서 또 어떤 희망을 찾는 것 같은 그런 태도. 저는 그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없으면 공허한 이야기가 되는데, 저자의 글엔 그 두 가지가 다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제가 나올 수 있었다고 봐요.
Q.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강남규 : 사실 저도 굉장히 냉소적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런 글을 써놓고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욕하겠지, 그러면 나는 손절 당하겠지, 그럼 안되겠지. 이런 생각 하면서 극복해요.(웃음) 언어로 박제를 해서 글 속의 나를 만들어 가는 거죠.
백종원씨가 했던 말 중에 자기가 기업을 하면서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되니까 기부도 하고, 어디 가서 좋은 말도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그런 백종원을 기대하더라는 거에요. 그러면 나는 다시 그 백종원이 되기 위해서 또 좋은 일을 하고, 또 좋은 말을 하고.. 계속 그렇게 척하면서 살다보니까 태도가 됐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그렇게 해 보려구요.
Q. ‘시민이 없는 사회’ 라고 하셨는데, 강남규, 김경훈 님은 어떤 시민이고 싶은가요?
강남규 : 2009년 대학에 입학한 그해, 쌍용차, 용산 참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강의실에만 앉아 있었어요. 현장에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어요. 그때의 부끄러움이 마음 깊숙이 박혀 있어요. 저는 계속해서 부끄러움을 아는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 제가 나섰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싶지만, 어쨌든 저는 쌍용차 노동자, 용산 참사 생존자들과 마주했을 때 떳떳할 수 없어요. 그 부채감을 계속해서 가지고 살고, 당시의 부끄러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시민은 누군가로부터 계속해서 부채감을 갖고 사는 존재라고 봐요. 그것을 제대로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죠.
Q. 저희가 오늘 두 분을 모신 이유는 두 분이 모두 <진실의 힘> 회원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힘> 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한건가요?
강남규 : <진실의 힘>을 알게 된 것은 2015년 ‘세월호, 그날의 기록’ 책이 시작이었지만, 저는 ‘이내창기념사업회’ 활동하면서 과거사 문제도 관심이 컸어요. <진실의 힘>이 과거사 관련 단체라서 취업 후 후원을 시작했어요. 제게 민주화 과정에서의 어떤 사건, 사람들은 마치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을 하듯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두는 영역이거든요,
김경훈 : 저도 비슷하게 ‘세월호, 그날의 기록’으로 <진실의 힘>을 알았지만, 실제로 후원을 시작한 것은 아디의 로힝야 사태 강의였어요. 평소에도 아시아 지역분쟁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강연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했어요. 저는 이름만 말하면 잘 아는 큰 단체들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작은 규모의 시민단체를 후원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시기이기도 했어요.
Q. <진실의 힘>이 청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가 늘 숙제입니다. 젊은 세대와 함께 하는 <진실의 힘> 이 되기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강남규 : 진실의 힘에 처음 왔을 때 간사님이 제 또래가 아니었다면 후원을 하지 않았을거에요.(웃음) 천천히 늙어가는, 경직되어 가는 시민단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주세요.
김경훈 : <진실의 힘>은 ‘세월호, 그날의 기록’ 책을 내면서 그런 고민은 한 단계 뛰어넘었다고 봐요. 그게 과거사랑 직접적으로 연결된 일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의 국가폭력과 연관되는 일이잖아요. 우리가 과거의 국가폭력을 돌아보고 바로잡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국가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 강남규, 김경훈 두 회원과 대화를 나누며, <진실의 힘>을 만든 선생님들이 떠올랐습니다. 고문과 조작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 자존을 지킨 삶, 그들이 바로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든’ 사람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