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진실의 힘 감사로 임명된 오현석 공인회계사를 소개합니다. 오현석 감사는 정책학을 기반으로 한 세무전무가로 공공과 민간, 영리와 비영리 분야에서 폭넓게 경험하고 활동했습니다.
올해 비영리법인과 공익법인의 후원, 회계, 감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시민 사회 내부의 문제 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실의 힘은 올해 설립자 출연금과 후원금이 책임감 있게 제대로 쓰이고, 잘 관리되었는지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현석 감사는 어떤 부분에서 ‘원칙’을 세우고, 또 어떤 부분에서 자율성을 유지해야 하는지 든든하고 냉철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기로 비영리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시게 되었나요.
공인회계사로서 회계법인 소속은 물론, 민간 기업에서의 활동도 두루 경험했습니다. 게다가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사회로부터 전문자격사로 요구받는 역할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09년 희망제작소 감사를 맡으면서 시작되었어요., 비영리 분야에 대해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어요. 개인의 전문적 경험과 지식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올해 시작한 공공경영연구소는 행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수동적거나 다소 사무적인 뉘앙스를 벗고 공공의 영역도 핵심은 경영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담아 이름을 지었어요. 경영이라고 하면 기업경영과 마찬가지로 경영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담고 있지요. 그 가운데 제가 회계사로서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재무분야인 거에요. 세입과 세출로 이루어진 예산회계는 물론, 재무회계는 정부를 이해하는 시작이에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회계를 어려워하다 보니 시민들이 정부를 쉽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저는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국회이든 자치단체의회이든 정부의 그 역할의 시작은 정부를 이해하는 거에요. 그 중에도 기초단체의회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해요. 이 부분에 제가 할 일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기초단체는 시민의 생활과 직접 맞닿은 공공의 최전선이기 때문이죠. 정부회계와 시민감사의 두 분야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 가운데 정부로부터의 확실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평가와 비판의 힘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비영리 단체의 감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비영리 단체에 대한 큰 똘레랑스(관용)를 갖고 있습니다. 영리든, 비영리든 어디서나 문제는 발생합니다. 다만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잘 설명할 수 있으면’ 됩니다. 이때 공인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고, 보수적인 유권해석을 두둔하여 일반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은 아닐테죠.
올해 정의기억연대 논란이 일어나면서 회계 전문가들을 향해 정치권과 언론의 질의가 쏟아졌습니다. 스스로의 역할을 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해는 모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형식적 정당성을 앞에 세워 엄격한 방식을 고수하기 보다는,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공신력을 활용하여 실질적 정당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용을 키워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보를 읽는 사람들이 모두 전문가는 아니니, 불필요한 혼선이 없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진실의 힘은 매년 국세청에 재무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재무 보고 기준과 방법이 비영리 분야에 적합하지 않고, 이에 대한 기관, 전문가의 의견도 다양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정부보고 및 시민을 위한 정보 공개에 대하여 단체의 사업과 활동에 대해 송곳 검증도 중요하지만 단체의 관행과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민간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성숙한 시스템을 만들어 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국세청이 기업에 대한 과세체계를 갖추면서도 법과 제도가 하나씩 갖춰지고 국세실무도 꾸준히 발전함으로써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이뤄갈 수 있었던 거죠.
이에 비해 비영리 분야의 법, 제도의 수준뿐 만 아니라 정부의 이해도 그다지 높지 않아요. 비영리 법인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보다 너그럽게’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비영리단체는 영리 목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성을 발휘하여 활동합니다. 그런데 성과를 화폐가치로 구할 수 있는 영리법인처럼 획일적 잣대로 비영리 법인을 평가하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아요. 사회가 보다 너그럽게 중요한 사회주체를 바라보고, 전문가도 공신력을 활용하여 지원해야 할 거에요.
구체적인 예로 국세청의 비영리 재무 보고 기준을 들 수 있습니다. 영리법인은 매출을 올리고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기업의 이익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과세하는 일을 합니다. 반면 비영리단체는 영리기업과 달라 국세청이 요구하는 획일적 양식으로는 정보의 완전 또는 적정한 공개가 쉽지 않죠. 따라서 국세청도 이런 실무를 반영하여 최근 해마다 보고양식을 수정하면서 개선발전 시켜가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제도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지금은 정부나 비영리 분야 모두가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공개된 정보를 통해 비영리단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단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러한 설명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사회적 아량이 필요합니다. 현장을 외면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맞느냐 틀리냐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어요.
올해 진실의 힘도 지난 회계, 재무 보고 내용을 검토하고, 미비한 지점을 보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준에 억지로 짜맞추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전문성’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정의기억연대 논란 당시에 언급된 공익법인 공시는 획일적 기준에 따라 정부에 보고하는 시스템입니다. 분명 필요한 정보입니다. 단체의 외부에서 단체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담고 있는 법에서 정한 수준인거죠. 문제의 본질은 재무정보라기보다, 단체에 투명하고 민주적인 리더십이 갖춰져 있느냐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단체의 재정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 단체는 설명하고 보여주면 되는 거죠. 비영리는 결코 사적 영역이 될 수 없어요. 그것이 단체의 책임입니다. 단체의 역할은 사회로부터 위임받은 거잖아요. 따라서 단체의 활동 과정과 결과는 알려져야 해요. 과정과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만약 불충분한 지점이 있다면 외부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죠.
진실의 힘의 사업은 장기적이고, 그 결과가 비가시적인 경우가 많아서, 앞서 말한 ‘복잡한 목적’을 가진 비영리단체의 성격이 큽니다. 진실의 힘의 활동은 어떻게 보시나요? 후원회원이 진실의 힘 활동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면 좋을까요?
진실의 힘은 재단법인입니다. 저는 단체의 정관상 목적사업을 보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단체의 정관은 가급적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거죠. 목적사업을 확장적으로 해석하면 단체의 활동은 유연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사회의 권한 범위가 모호해지면서 단체에 대한 감독 또는 통제가능성을 약화시키게 되니까요.
진실의 힘 정관 제3조 [사업] 이 법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업을 한다.
1.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치유와 재활 및 지원 사업
2. 인권침해의 진상규명 지원 사업
3.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치유와 재활을 위한 연구, 조사, 교육, 홍보, 출판, 학술 사업
4. 중대한 인권침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내 및 국제법과 제도의 이행과 개선
5. 아시아 지역의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6. 한국의 민주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일반여행업
7. 그밖에 이 법인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을 포함한 수익사업
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사업, 즉 후원금의 쓰임새를 평가할 때는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정관 상의 목적과 집행조직의 활동을 긴밀하게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또한 진실의 힘은 외부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충분히 설명 가능해야 하며, 그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