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앞에서 ‘불법’인 사람은 없다 

유서희(자원활동가)

유서희님은 2018년부터 진실의 힘 대학생 자원활동가입니다. '노동법' 강의를 들으면서 고민했던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을 담아낸 글을 보내왔습니다.   

동네에서, 식당에서, 건설 현장을 지나며 마주친 이들을 떠올려보니 ‘외국인노동자 100만 명 시대’가 실감이 난다. 빈번한 외국인노동자 사망 소식에 무뎌진 탓일까. 노동법 수업에서 외국인고용법에 관한 판례를 접하기 전까지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만 7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사망했고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3%에 못 미치는 외국인노동자가 산재 사망 노동자의 10%를 차지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질문을 던져본다. 왜 이렇게 외국인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잦은 걸까?

2017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내국인보다 최소 6배가량 높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실제 산재 발생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pixabay.

외국인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양면적이다.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면 흔히 열심히 일하는 순박한 청년의 이미지를 상상하거나 1970년대 독일로 파견된 한국의 간호사들과 광부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인노동자 때문에 “중소기업이 공장 문을 닫을 판국”이라거나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우려한다. 주52시간제나 최저임금 같은 내국인에게는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가 외국인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다면 저임금 중노동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것 같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내국인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을 논하기에는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상황이 너무나 처참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는 숙소에서 하루 최소 12시간을 일하고, 마스크 없이 농약을 뿌리고, 사장님의 구타와 폭언에 시달리는 등 이들의 처참한 상황은 글로 온전히 전할 수 없다. 

2015년 6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도 노조를 설립해 노동3권을 추구할 수 있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노동권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세계일보

외국인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고용허가제하에서 외국인노동자는 사업장 최대변경가능횟수를 제한받고 사업장 변경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최대변경가능횟수를 초과하여 사업장을 이동한 외국인노동자는 미등록 체류자가 되어 사용자의 인권침해나 부당노동행위를 감수하고 계속 근무하거나 계약을 해지하고 출국해야 한다. 외국인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은 내국인 노동자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근로조건을 국가로부터 확인받은 곳이다. 이러한 사업장의 인력수급은 사업장 이동의 문제가 아닌 도입 규모의 조정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므로 외국인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을 제한할 이유는 없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외국인노동자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현대판 노예제”를 폐지하라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은 결코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국가의 의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입국하여 한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세금 부담 등 거주민의 의무를 다하며 살아간다. 국적이라는 임의적인 요인을 근거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 경제를 위해 외국인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전태일과 김경숙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국가의 성장이 약자의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폭력적인 관념을 떨쳐내지 못했음을 보여줄 뿐이다. 

위험의 ‘이주화’ 현상에 무뎌진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은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삶을 버텨내고 있다. 권리와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죽어간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더 많은 주목과 애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