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5월의 날씨에 안성례 선생님의 스물한 번째 마이데이가 있었습니다. 여든둘의 연세에도 너무나도 총명하고 생생하게 당시 선생님의 상황과 감정을 쏟아내셔서, 그 폭발력에 압도되어 한 시간 반 가량을 이야기에 푹 젖어있었습니다. 그 비극의 시기를 저는 경험하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감히 그 고통과 번뇌, 투쟁의 결연함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감정을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이야기에 잠시나마 그 당시 운동의 가장 선봉에 있었던 투쟁가이자, 당대를 겪은 미시적인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진실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그들아 다칠라. 물러나 있어라. 인자부터 엄마들이 나설랑께.”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서로의 팔짱을 끼고 도로에 서서 전경들과 대치했던 어머니들이 역사를 바꾸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안성례 선생님의 삶의 궤적 그 자체만 보더라도 가장 헌신적이면서도 보듬는 존재인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일 수 있는 강인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5남매의 엄마로 살기 이전에 광주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저항하고 있는 사람들의 엄마이고자 했던 선생님의 의지가 바로 광주의 오월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저희가 배우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는 투쟁과 저항을 만들어 낸 개인들의 이야기가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폭발하는 감정을 가지고 그 모든 이들의 ‘엄마’가 되고자 했는지, 그 개인의 삶에는 어떤 굴곡진 이야기가 녹아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마이데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분노하고 강인한 투쟁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남편분과 따님과 같이 선생님 개인의 삶의 근저에 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선생님께서 형을 살고 나오셨을 때 최루탄을 맞느라 고생했다고 말씀하시자, 남편분께서는 “그까짓 것이 무슨 고생이냐”며 소리치셔서 무안을 당하셨다고 하는데요, 나중에 들어보니 명노근 선생님께서는 광주YWCA구국기도회사건으로 투옥되신 후 잔혹한 고문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재활팀장으로 계시는 따님, 명지원 선생님께서는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수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당시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 상황이셨는지 깊이 느꼈다며 공감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를 헤아리고 싶지만 사실은 서로 묻고 답하는 것조차도 너무나도 어려웠던 당대의 삶에 마음이 아렸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 시대의 어둠에도 손 내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이렇듯 단순히 ‘투쟁가’나 ‘운동가’라는 말로 선생님들 개개인의 정체성을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면면을 펼쳐 함께 읽어나가는 것이 또한, 마이데이의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철인 같아 보이는 운동가도 한편으로는 삶의 저릿함을 가진 개인이기도 하고, 그 개인에게 분노어린 시대가 도화선이 되어 광주 오월의 어머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람 하나를 살리려고 이리 발버둥 치는데 국민을 지킨다는 저 군인들은 손가락 까딱 한 번에 목숨을 앗아가나.”
선생님 개인의 굽이친 삶의 눈물이 있지만, 미시적인 개인으로 남는 것을 넘어 지금 우리,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삶을 걱정하고 보살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안성례 선생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엄혹한 시대에 맞서 광주의 자식들을 지켜냈고, 그들의 엄마들이 다치지 않도록 한 자리에 모으면서 오월의 어머니로 삶을 살아낸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나간 ‘엄마’의 오월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오월을 만들어 낸 분들의 삶의 페이지들을 곱씹고 기억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짧은 소감을 마무리하기 전에 몇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렇게 당사자 선생님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내실 수 있는 기회는 늘 너무나도 소중하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자원 활동을 하면서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선생님들의 고문 치유 모임 녹취를 풀어낸 적이 있는데요, 그때 역시도 선생님들께서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 어렵게 하시고 서로가 공감하면서 치유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참 저렸습니다. 이렇듯 늘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선생님의 옆에서 손잡아드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시는 진실의힘께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김홍민(진실의 힘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