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간첩단 사건’ 고문당한 김철씨
광주트라우마센터 국회 심포지엄
끔찍했던 당시 고문 악몽 털어놔
“재심 무죄에도 가해자 처벌 못해”
피해자 구제·지원 법률 제정 촉구
“고문수사관을 단 한명도 처벌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17일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국가폭력·고문생존자 재활과 국가의 의무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서 고문 피해자들이 모인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인 김철(75·사진)씨는 과거의 악몽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1989년 일본 관련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돼 7년 동안 옥고를 치렀던 그는 2010년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수개월 동안 밀폐된 고문실에서 일제강점기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독립군을 고문했던 방식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김씨에겐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끔찍했던 고문실은 그 자체가 공포다. 그는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강타하는 것도 모자라 물고문, 거꾸로 매달고 온몸을 찌르기, 성기 고문, 바늘로 손톱 찌르기, 잠 안 재우기 등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며 “고문실이 생생히 떠오를 때면, 온몸이 쑤시는 통증으로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꼬박 세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지만, 고통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람들은 저에게 이제 무죄를 받았으니 다 해결된 것 아니냐, 국가로부터 보상금 받았으니 다 된 것 아니냐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무죄나 손해배상이 고통을 어느 정도는 위로해주지만, 고문 수사관들과 그들의 범죄를 알고서도 오히려 저를 간첩으로 몰아세운 검사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재심 재판에는 저를 고문한 수사관이 검찰 쪽 증인으로 출석해 범죄행위를 부인했고, ‘빨갱이를 잡은 애국자’라고 강변했다”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과 그 시대를 용서하고 떠나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것, 참 기가 막힐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도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파헤쳐 자신의 범죄를 인정할 때 사면을 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진상규명을 하고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판결도 나왔지만, 단 한사람의 고문 수사관도 처벌하지 못했고 기소했던 검찰 역시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송상교 변호사는 “고문 피해자인 고 김근태 의원의 부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고문방지 및 고문 피해자 구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공권력남용방지와 피해자지원위원회’를 두고 피해자에게 구제·지원금,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고 피해자 전문의료센터를 지정하는 등의 방안을 담고 있지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