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봄소식이 반갑게 들려오던 날, 진실의 힘에서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의 강연이 열렸습니다. 채현국 선생님은 2014년 1월 4일자 <한겨레> 이진순의 열림 인터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는 SNS상에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격동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선택과 고민을 치열하게 했던 채현국 선생님은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진 않았다. 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전 세대가 목말라하던 ‘좋은 어른’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채현국 선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후원회원을 비롯한 60여 명이 모였습니다. 서로 어깨가 맞닿을 만큼 바투 앉아야 했지만, 채현국 선생님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궁금증과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작은 체구의 채현국 선생님은 힘차고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기왕 늙은이에게 물어보는 거 체면 보지 말고. 얼마나 드럽고 유치하고 비겁하게 살았는지 물어봐요.”
첫 마디를 시작으로 참석자들의 손이 하나, 둘 올라갔습니다. 스무 살 청년부터 흰머리 지긋한 노신사까지 이들의 질문은 다양한 색깔이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도덕적 죄책감’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군대에서 병장 계급을 달았을 때, 자연스럽게 자만심을 가졌던 스스로에게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괜히 자책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시오. 좀팽이면 좀팽이로,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 않아요. 스스로를 조금만 더 믿어봐요.”
채현국 선생은 한때 탄광 운영을 하며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었던” 거부이기도 했고, 유신 시절 핍박받는 민주화 운동가들의 든든한 뒷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경남 양산의 개운중, 효암고의 이사장입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 세월을 지나오면서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많은 길을 걸었던 선생이지만 교육 사업만큼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아이들과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지친 아이들과 잠시나마 ‘헛소리’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즐겁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나는 당신 같은 인생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이렇게도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고 물었습니다. “어느 시대든 첨예하게 다른 삶의 모습이 있지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채현국 선생은 “자신을 조금 더 믿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신념과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바투 앉아 타인의 온기가 힘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은 끝이 났지만 모두 둘러 앉아 함께 밥상을 나눴습니다. 동부시장 명물이라는 모둠전과 부침개, 종로구 계동의 손 두부, 군산 개야도에서 진실의 힘 이사인 임봉택 선생님과 편복희 선생님이 바닷바람과 섬의 햇살이 길러낸 배추로 만든 김치기 한 상 가득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봄밤이 무르익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