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호화폐가 나쁜거야? 아니야, 문제는 사람이야!
암호화폐를 단순한 투자·투기 대상이나 기술적 신기루로 보지 않고,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정치가 반영된 문화적·역사적 결과물로 분석한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경제는 탈정치적이고 객관적인 이윤 추구의 영역이 아니라 특정 주체들의 이념과 가치관이 투영되는 공간이다. 과거 런던의 탈규제 금융 시장 형성 과정에서 보듯, 경제 활동의 향방은 시장 참여자들의 정치적·사상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암호화폐 역시 기술 자체의 선악을 따지기보다 이를 전유하고 활용하려는 정치적 주체들의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중앙집권적 발행 주체 없이 개인 간 거래의 가치를 보장하고 이중 지출과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공급량을 제한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는 중앙은행과 국가 권력의 화폐 독점에 반발하는 정치적 명분을 제공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암호화폐에 열광하는 현상은 노동과 부동산을 통한 계층 이동이 막힌 사회적 불평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분출된 좌절의 표현이다. 이러한 탈중앙화적 특성은 당대의 임금·소득 불평등과 기존 주류 정치의 실패로 인한 대중의 분노를 흡수하며 극우 정치가 암호화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전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신자유주의 및 금융위기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합리적 분노를 바탕으로 부상했듯, 극우 세력은 기존 통화 체제와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을 고리로 암호화폐를 자신들의 정치적 해법으로 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암호화폐는 민주주의와 기존 통화 질서를 위협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재구성되고 있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 이를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역사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2. 암호화폐의 과거 ― 사상적 기반과 기술적 원형의 결합
암호화폐의 사상적 뿌리를 추적하려면 1970년대 신자유주의 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0~60년대 서구 사회는 고용 보장과 복지를 우선시하는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했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생산성 정체와 석유 위기가 겹치며 물가 상승과 실업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이했다. 이에 신자유주의자들은 방만한 정부의 통화 발행과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경제를 유린했다고 주장하였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전환을 선택하였는데 영국은 노조를 억압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이에크는 1976년 발표한 <화폐의 탈국가화>라는 논문을 통해, 정부의 통화 발행권이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정부를 포함해 민간 은행들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하고 경쟁하는 시장체제를 제안했다. 부실한 화폐는 퇴출당하고,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는 우량 은행의 화폐만 살아남는 '시장 정화 작용'이 일어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 주장은 당시 학계에서는 우파적 비약으로 취급받아 외면당했으나, 국가의 승리가 아닌 시장의 승리라는 서사를 만들고자 했던 우파 싱크탱크(경제문제연구소, 미제스 연구소 등)를 통해 집요하게 살아남았다. 이들은 링컨의 그린백 발행이나 과거 국가 정책을 역사적으로 수정·비판하며 화폐 독점 해체의 당위성을 축적해 갔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이 하이에크의 탈국가화 사상은 인터넷 공간의 해커 집단인 '사이퍼펑크(Cypherpunk)'를 만나며 비로소 기술적 원형을 얻게 되었다. 국가 권력과 감시를 극도로 혐오하는 무정부주의적 성향의 해커들은 개인의 사생활과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암호학(Cryptology)을 연구했다. 이들은 중앙 연산자 없이 개인 간 컴퓨터 잉여 자원을 나누는 분산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국가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구상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만든 초기 암호화폐 단위를 '하이에크'라 이름 붙이는 등, 하이에크의 사상적 틀 위에 탈중앙화 네트워크 기술을 얹음으로써 국가가 없는 암호화폐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3. 암호화폐의 현재 ― 2008년 금융위기와 암호화폐의 정치적 의미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전 세계적인 폭발력을 얻게 된 결정적 모멘텀은 바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가 등장한 이 시기는 단순히 기술적 완성이 이뤄진 때가 아니라, 기존 국가 통화 체제와 중앙은행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파산한 시기였다.
2008년 위기 당시 진보 진영이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며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으로 나아갈 때, 극우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이를 '자유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와 중앙은행(연준)의 실패'로 재해석했다. 닉슨 쇼크 이후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국가는 무제한으로 통화를 발행할 권한을 얻었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대중의 사유재산과 구매력을 지속적으로 약탈해 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동안 노동자 계급과 일반 대중은 엄청난 경제적 고통에 직면했다고 강조하며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다.
미제스 연구소를 비롯한 극우 싱크탱크와 론 폴 같은 정치가들은 팟캐스트와 뉴미디어를 이용해 진지전을 벌였다. 이들은 소외된 백인 노동자 계급(레드넥)과 금융 시스템에 환멸을 느낀 대중에게 "연준을 폐지하고 국가의 화폐 독점을 끝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집요하게 유포했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국가의 개입 없이 발행량이 고정되어 있고 중앙은행의 검열을 받지 않는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극우 포퓰리즘 세력은 기존 정치 체제에 불만을 품은 대중을 포섭하기 위해 암호화폐의 탈중앙화 명분을 적극적으로 전유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4. 암호화폐의 미래 ― 민주주의의 우회와 네트워크 국가라는 정치 인프라
극우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암호화폐 세력이 꿈꾸는 궁극적인 미래는 단순히 국가를 견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목표는 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대중 민주주의 안에서는 규제 없는 완전한 시장 자율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영토 국가 내에 구멍을 뚫어 노동법과 규제, 과세가 미치지 않는 특별 구역(마산 자유무역지역, 홍콩, 싱가포르 등)을 선호해 왔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피터 틸의 <개인 주권자> 구상이나 발라지 스리니바산의 <네트워크 국가(Network State)> 개념처럼, 국경과 국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가상 공간이나 클라우드 형태의 주권 체계를 지향한다. 자본과 개인의 정보를 마이크로칩과 암호 네트워크 뒤에 숨겨 언제든 국가 시스템으로부터 탈출(Exit)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다. 개인이 국가를 탈출하여 세금을 내지 않게 되면 복지국가는 재정 기반을 잃고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국가와 민주주의가 사멸한 가상 공간 혹은 시장 특구에서 경제 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통화 체제가 바로 암호화폐다. 익명 거래가 가능하고 국경을 초월하며 국가의 과세권을 무력화하는 암호화폐야말로 이들이 꿈꾸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암호화폐는 단순한 금융 투자 상품이나 순수한 기술적 혁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불평등에 신음하는 대중의 불안을 먹고 자라나, 기존 국가의 통화 주권을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우회하여 새로운 시장 독재를 완성하려는 극우 정치가 구축해 가고 있는 거대한 '정치적 기반 체계(Infrastructure)'인 것이다.
5. 암호화폐를 둘러싼 정치적 쟁점
암호화폐 자체를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암호화폐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국가의 금융제도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금융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암호화폐를 무조건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경계하는 것은 암호화폐가 국가의 통제를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까지 제거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국가의 규제와 조세를 피하고 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공간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암호화폐가 경제적 기반이 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암호화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그것을 만들고, 누가 지배하며,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암호화폐가 극우정치의 인프라가 될 가능성과 동시에 금융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질의응답>
Q1. 강연에서 다룬 사상은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워 보이는데, 왜 강좌 제목에 '극우'라는 표현을 쓰셨나요?
A. 암호화폐의 실제 접근성이나 투자자 분포를 보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처럼 보여도 지역적·계층적 편차가 큽니다. 남부 지역 백인 노동자 계급(레드넥 등)을 중심으로 한 소액 투자자층에서 반응이 뜨거운 반면, 동등한 계층의 흑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관련 인프라가 사실상 부재합니다. 결국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이들의 경제적 소외감과 인종적·문화적 불안감을 자극하며 암호화폐를 수용한 결과, 자유지상주의적 화폐 논리가 극우 정치의 핵심 세력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포섭된 것입니다.
Q2. 암호화폐 자체에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나요?
A. 이론적으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을 예로 들면, 반감기를 거쳐 단위 시간당 발행량이 줄어들며 궁극적으로 총발행량이 고정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통화량 자체가 제한되므로 구조적 인플레이션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격한 가격 변동은 인플레이션이라기보다 '투기적 버블'이자 가치에 대한 '신뢰'의 변동 폭으로 봐야 합니다. 비트코인은 금처럼 연동되는 절대적 기준 자산이 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투입 노동 가치라기보다는, 오늘날 모든 가치가 공중에 떠 있는 변동환율제(Floating Exchange Rate) 환경 속에서 이용자 간의 '합의와 신뢰'가 가격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비주류 경제학이나 케인즈의 화폐론처럼, 화폐를 특정 금속이 아닌 공동체의 합의이자 사회적 신뢰로 해석할 때 암호화폐의 가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Q3. 암호화폐가 민주주의를 우회하는 것처럼, AI 역시 인간의 노동을 거세하거나 대기업과 거대 자본에 흡수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
A.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타당한 지적입니다. 일론 머스크처럼 인간을 결함이 있는 존재로 보고 기계·AI 및 칩 이식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기술주의자들의 시도를 보면 노동과의 강한 긴장이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저개발국 노동자에게 암호화폐로 임금을 주면 열악한 금융망을 거치지 않아 자유로워진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해당 암호화폐 시스템을 발행·관리하는 주체가 미국 국방부나 거대 백인 자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노동의 종속성이 강화될 위험이 큽니다. 아직 이를 증명할 실증적 연구 사례를 찾아 나가는 단계이지만, AI나 암호화폐가 기술이라는 명분 뒤에서 거대 자본의 노동 지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Q4. MMT나 현대 화폐 철학에서는 통화 발행을 통한 기본소득을 제안하는데, 인플레이션이나 자본 유출 우려 속에서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A. 일국(1국) 차원은 매우 위험하며, 결국 조세 제도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대 통화 이론(MMT)에 따르면 국가는 통화를 발행해 기본소득을 줄 수 있고 이것이 실물 경제에서 흡수되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현재처럼 자본 이동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된 환경에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자본 통제력이 없는 국가가 혼자서 과도한 통화 발행 기반의 기본소득을 추진하면 자본 탈출(capital flight) 현상에 따라 국가 경제의 자본형성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화폐 발행에만 의존하기보다, AI 및 신산업 분야의 소유자에게 정당하게 세금을 거두는 '조세 개혁'이라는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합니다.
Q5. 피케티의 기본소득론에 동의하시는지, 그리고 기본소득을 암호화폐로 지급한다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A. 피케티의 분석은 매우 탁월하지만, 개별 국가 차원의 해결책에는 회의적입니다. 피케티 본인도 지적했듯 국제적인 자본 이동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처럼 글로벌 차원의 공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1국 차원의 정책은 글로벌 자본의 탈출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소득을 '암호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역시 본래의 의도를 달성하기 힘듭니다. 지역 경제의 순환을 돕는 '지역 화폐'와 달리, 글로벌 암호화폐는 지급받는 순간 실물 경제로 흘러들기보다 투기적 자산으로 쌓이거나 국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국가의 재정 수입(조세)에 기초하지 않은 통화 발행 방식은 자본의 탈국가화를 촉진하여 기본소득의 본래 목적인 소득 재분배와 사회안정망 구축을 오히려 방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