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진실의 힘 <마이 데이My Day> 프로그램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진실의 힘에서는 지난 2008년도부터 국가폭력 특히, 고문피해자 분들을 대상으로 집단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트라우마 증상들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고문의 잔혹성으로 인해 그 증상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국가의 이름으로 부당하게 자행된 폭력에 대한 울분과 폭력에 굴복하고 말았다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은 토해내고 또 토해내도 그만큼 다시 생겨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는 다른 트라우마도 마찬가지이지만 유독 고문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심각하게 이어지는 특징입니다. 고문이란 처음부터 한 인간을 폭력 앞에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집요하게 이루어진 잔혹행위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문 앞에서 한 인간의 인격과 영혼은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고문이 끝나고 난 뒤입니다. 외부의 고문은 끝이 났지만 이는 내부의 고문으로 이어집니다. 감당할 수 없는 울분과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은 그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스스로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정신적 고문이 내부에서 벌어집니다. 고문을 겪은 많은 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혐오하고 무가치하게 느끼고 스스로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고문으로 인한 트라우마 치유는 다른 트라우마 치유보다 지속적이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면의 폭력에서 벗어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치유의 연속성에서 고안된 프로그램이 <마이 데이>입니다.
마이데이를 고안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능동성의 회복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고문피해자’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부당한 폭력을 고발하고 진실을 증언하는 ‘고문생존자’로 거듭나는 상징적인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 지지입니다. 국가폭력을 당한 분들은 그 폭력의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에 세상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갖게 됩니다. 특히, 출소 후에도 간첩의 낙인을 받아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살아오셨던 고문생존자 분들은 더욱 더 심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혼자가 아니고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는 이웃과 사회가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서는 결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이데이는 상상할 수 없는 폭력에 무참히 짓밟혔지만 용기를 내어 진실을 이야기하는 선생님들에게 무한한 지지와 감사를 보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준비한 마이데이는 2010년 11월 23일 고문생존자 이 준호 선생님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21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21일에 5월 어머니 안 성례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했습니다. 마이데이는 어떤 고정된 질문이나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데이 주인공이 무대에 올라 자신에게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와 그 폭력으로 자신의 내면과 삶이 어떻게 파괴당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무엇이 느껴지고 있는 지 잠시 동안 들어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진실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가진 힘은 엄청납니다. 무엇보다 공감의 힘입니다. 상담을 할 때 내담자와 상담자가 공감이 잘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심박동수가 거의 일치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이데이 시간에도 그러한 일이 흔히 벌어집니다. 주인공은 고통을 이야기하고 관객은 위로와 지지를 보내는 일방적인 자리가 아니라 관객 역시 자신 안에 해결되지 못한 개인적 혹은 사회적 고통이 교감되며 위로와 힘을 받는 시간이 됩니다.
마이데이는 은밀한 개인적 치유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치유의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가장 큰 상실이지만 우리는 장례라는 의식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사람들과 함께 그 슬픔을 위로받습니다. 마이데이 또한 그렇습니다. 안전하고 지지받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혀 온 고통의 일부를 떠나보내는 자리입니다. 물론 마이데이를 한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은 이어집니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고통의 질감’은 달라집니다. 자신을 후벼 팔 정도로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은 기억은 점점 부드러워지면서 조각난 자아와 삶은 다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고통을 이야기하고 고통을 나눔으로써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마이데이를 진행하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고통이 바로 고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극한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은 장애나 파멸로 고착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대하는 고문생존자 선생님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정신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더 깊이 연결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혼자 기억하는 것은 상처이지만 함께 기억하는 것은 치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실의 용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주셨던 마이데이 주인공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전합니다.
문요한, '마이데이'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