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이 존재하느냐, 그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김승현 변호사 인터뷰(법무법인 지평, 강용주 이사 보안관찰 소송 변호인단)

“저는 14년간 갇혀있던, 1평도 안 되는, 창살 있는 독방에서 벗어났지만, 18년째 여전히 보안관찰법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보안관찰은 제 삶을 과거로 묶어 놓으려 합니다. 이미 32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을 ‘재범’할 것이라고 멋대로 추측합니다. 국가가 조작한 사건의 피해자에게 오히려 반성하라고 윽박지릅니다.”

보안관찰 신고의무에 대해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진실의 힘 이사, 강용주 선생의 최후진술입니다. 강용주는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사상전향을 거부하며 14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강용주는 “한 인간의 영혼을 국가권력이 굴복시키는” ‘종이 한 장’ 준법서약서*에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1999년 석방 이후, 보안관찰**대상자가 된 강용주는 ‘불복종 운동’을 이어갔습니다. 보안관찰이 7번 갱신되는 동안 세 번 기소되었고, 2018년 2월 세 번째 기소에서 강용주는 보안관찰 신고의무 위반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강용주의 계속된 투쟁 뒤에는 법무법인 지평의 변호인단 조용환, 최정규, 김승현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시민들과 언론도 지속적인 보도와 해시태그 운동(#내가 강용주다!) 등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냈습니다. 

무죄판결 이후 강용주는 보안관찰 처분 면제 요건인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했고, 그해 12월 법무부는 강용주에 대한 보안관찰 처분 면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 법무부는 보안관찰법 시행령 입법예고를 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준법서약제도의 흔적을 지울 것임을 밝혔습니다.

1989년 제정된 보안관찰법과 같은 나이의 김승현 변호사는 강용주 선생의 세 번째 보안관찰 신고의무 위반 소송의 변호인입니다. 김승현 변호사에게 ‘무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던 법적 논리와 준법서약 제출을 거부하며 보안관찰 면제를 받아낼 수 있던 과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저항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시대적 의미가 있는 사건을 변호인으로 함께 한 소회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준법서약서

사상전향제도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하여 시작한 것으로, 인간의 내심, 사상을 포기하도록 강제하며, 그것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한 제도다. 사상전향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동반됐고,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0.75평 독방에 사람을 30~40년씩 가둬 뒀다. 세계최장기수 김선명 씨는 무려 45년간 갇혀 있어야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사상전향제는 폐지됐지만 이름만 달리 한 ‘준법서약제’로 대체되었다. 체제에 대한 충성 등을 드러내야 하는 ‘사상전향’이 ‘준법의지’로 바뀌었을 뿐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임은 동일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가석방 과정에서 필요한 준법 서약은 폐지되었지만, 사회안전법을 대신해 1989년 도입된 보안관찰법 시행령에서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준법서약서는 보안관찰 면제를 위한 필수 사항이었다. 


**보안관찰법

국가보안법 제4조, 5조, 6조, 9조와 형법상 내란죄나 반란죄 등으로 3년 이상 형기를 산 이들은 ‘보안관찰처분대상자’가 된다. 법무부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의 행정처분인 보안관찰은 이미 법원이 선고한 형벌을 마친 사람을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경찰의 감시와 관찰 하에 두는 제도다. 보안관찰 대상자는 거주지, 동거인, 교우관계, 직업, 수입, 종교 등에 대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고, 3개월에 한 번씩 누구를 어디서 만났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을 보고해야 한다. 보안관찰의 갱신은 2년 마다 법무부 처분으로 결정되고, 최장 몇 년까지 할 수 있다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한 연장될 수 있다.

무죄 판결받은 후 서울중앙법원의 풍경. 강용주, 김승현 변호사, 최정규 변호사. ⓒ한겨레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것은 강용주 사건이 최초입니다. 이전에 법원은 이미 보안관찰처분 결정이 난 피보안관찰자는 그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는 게 당연하다고 봤습니다. 강용주 사건에서 어떻게 무죄를 이끌어낸 건가요? 

본 재판에서 크게 두 가지를 다투었습니다. 하나는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면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를 위반하더라도 무죄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쟁점을 해결해야만 첫 번째 문제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아직 판례가 명확하지 않고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보안관찰 처분 자체가 위법하다면,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저희 주장이 이전의 변론과 차이점을 갖는 것 같습니다.

변호인단이 이번 사건에서 총기 소지 신고 등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며 변론을 폈던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보안관찰 사건뿐만 아니라, 형벌은 인권과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어요. 아무리 죄를 지었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이라도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어야 하고, 형사처벌은 최후의 보충적 수단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저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 비록 1심 판결이지만, “처분사유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위법한 처분을 했다면 그러한 처분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형사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를 명확히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형사처벌을 함으로써 보호할 수 있는 법익이 없는데도 처벌을 감행하는 것은 결국 괘씸죄밖에 되지 않고, 인권존중 및 형벌의 최후수단성에 반한다고 법원이 판단한 거죠.

이 점을 설득하기 위해 변론 당시 예로 든 것이 총기소지 우화입니다. 보안관찰과 마찬가지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총기를 소지한 사람은 총알 숫자를 신고하라”는 법이 있다고 가정한 것입니다. 총기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총기소지자의 가슴에 딱지를 붙이고, 가슴에 딱지가 붙은 총기소지자는 두 달마다 총알의 개수를 신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일을 게을리 해서 총을 갖지도 않은 사람 가슴에 딱지를 잘못 붙여버렸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딱지가 잘못 붙은 당사자가 총알 개수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타당할까요?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법익이 무엇일까요? 

강용주 선생님도, 국가가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데도 보안관찰 대상자로 분류했고, 이에 당사자는 자신의 ‘위험성’과 관련된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잘못한 건 국가인가요, 당사자인가요? 보안관찰법에 정당한 보호법익이 인정되는지 자체도 문제이지만, 일단 이 점은 인정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강용주 선생님의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강용주 선생님을 처벌한다고 해서 보호되는 법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인권만 침해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보안관찰 대상자는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보안관찰의 처분과 갱신의 근거가 되는 ‘재범의 위험성’은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을 하나요? 또 강용주의 경우, 처분의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했나요? 

일단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나 애매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상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지 판단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렇게 자의적인 기준으로 개인의 인권을 중대하게 제한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기준을 보면, 다른 국가보안법위반 전력자와 자주 접촉을 하는지, 거주지가 일정한지, 직업은 있는지 등을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강용주 선생님은 최초 처분 이후로도 7차례나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을 받아서 처분이 갱신되었고요. 갱신되는 경우, 이전 2년간의 보안관찰 기간 동안 관찰한 내용이 기준이 됩니다. 지난 2년 동안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관찰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기초로 판단합니다. 

저희는 소송에서 첫째, 지금까지 법무부, 검찰, 경찰이 강용주 선생님을 관찰하면서 기록한 서류, 둘째, 강용주 선생님에 대한 보안관찰을 직접 담당한 2명의 공안 경찰 증인신문, 셋째, 강용주 선생님의 지인(정혜신 정신과 의사, 조현 한겨레신문 기자) 증인신문을 통해서 ‘재범의 위험성’ 판단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다퉜어요.  

재판 중 경찰의 동태보고서를 법정에서 다툴 때 보고서가 안일하고 관행적으로 작성된 것을 변호인단이 지적한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특히 ‘진실의 힘’ 활동이 동태보고서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보고서에 똑같은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 한 것이 눈에 띄었고요. 그 내용 자체도 보안관찰 처분 사유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동태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이 ‘진실의 힘’ 활동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전력자들의 단체에서 회합을 했다, 진실의 힘 송년회에서 사회를 봤다, 납북어부를 만났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고요. 나머지는 진실의 힘 독감예방접종(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 등에서 독감예방주사를 접종한 ‘상처입은 치유자’ 프로그램), 세월호 관련 활동 등 당시 정부에서 좋아하지 않던 활동이 적혀있었습니다. 또한 보안관찰 신고를 거부하는 것 자체, 경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언동과 관련된 서류가 많았어요. 이렇듯 축적된 서류만 보더라도, 정작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근거는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보안관찰을 직접 담당한 경찰 증인신문에서 그들도 ‘재범의 위험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오히려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당시 증인으로 소환한 담당 경찰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재범의 위험성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그냥 전임자가 작성한 내용을 그대로 베껴 썼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명(전임자)은 과거 공안사건을 많이 담당했다고 스스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처럼 부실한 조사를 근거로 보안관찰처분을 갱신해도 되느냐는 변호인측 신문에 “나는 척 보면 안다”고 증언했어요. 아무리 진실의 힘 선생님들이 무죄를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다, 본인은 이전에 이런 사건을 담당했기 때문에 ‘알고있다’고 하더군요. 어두운 시대의 유산이 이 사람에게는 ‘확신’으로 남았고, 이 사람은 그 확신을 남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검찰이나 상위 기관이 없었고 오히려 상부기관이 이를 방조하고 조장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결과로 강용주 선생님 같은 피해자가 만들어진 것이고요. 강용주 선생님은 저항해왔던 사람이기에 결국 오늘과 같은 결과를 받아낼 수 있었지만, 저항할 수 있는 자원이나 힘없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강용주 이후 다른 보안관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무죄가 앞으로 검찰, 법무부의 자의적 판단에 제동을 거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두 기관 모두 진작에 스스로 제동을 걸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보안관찰법위반 형사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은 이번 소송에서 처음 나온 것이지만, 보안관찰 처분을 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번에 새로 받아낸 기준은 없습니다. 기존에 다른 피보안관찰자들이 행정소송으로 싸우며 만들어온 기준이 있었거든요. 재범의 위험성 없이 함부로 보안관찰처분을 하지 말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대법원이 제시했는데, 법을 집행한다는 대한민국 법무부에서 그 기준을 무시하고 계속 처분을 해왔고, 그걸 검찰이 받아 기소까지 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결국 법 집행기관이 ‘창피’를 당한 것이 가장 의미 있다고 봅니다. 국가안보를 위해 계속 관찰을 해야 한다고 무려 16년간 고집해왔으면서 정작 관찰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지요. 정당한 사유도 없이 개인에게 보안관찰이라는 고통을 계속 가하기 위해 법무부 스스로 법과 확립된 판례를 어겼다는 점도 드러났고요. 이례적으로 검찰이 무죄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도 그런 부담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는 무죄는 받았지만, 위헌결정까지는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보안관찰법 자체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에서 보안관찰 면제, 준법서약서 폐지와 관련된 논의를 끌어가면서 실제 변화에 공헌을 크게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강용주 한 사람의 무죄를 넘어서 보안관찰법 존재 자체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법이 존재하느냐, 어떤 법이 존재하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수준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용주 선생은 2018년 2월 무죄를 받았는데, 12월 중순이 되어서야 보안관찰 면제가 되었습니다. 굉장히 오래 걸렸고 보안관찰 소송이 한창이었을 때보다는 사람들이 관심도가 떨어진 상황이었을 텐데, 보안관찰 면제를 위한 변호인단과 강용주의 대응은 무엇이었나요.

2018년 2월 21일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때가 강용주 선생님의 보안관찰 처분 갱신 기간이 끝날 때쯤이었습니다. 법무부가 이걸 갱신할지 안 할지 재판부도 관심을 가졌는데, 결국은 갱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재판부나 저희에게 통보하지 않았습니다. 또, 법원이 “법무부가 강용주에게 보안관찰을 해온 게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렸으니, 법무부가 당연히 위법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면제처분을 할 줄 알았는데 감감 무소식이었어요. 보안관찰법의 문제 중 하나가 처분을 갱신하지 않더라도, 면제처분을 하지 않으면 여전히 일부 신고의무가 남아있다는 것이에요. 계속해서 면제 결정을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5월 31일에 면제결정청구를 넣었습니다. 

당시 저희가 가장 고민한 게, 법령에서 면제결정청구 신청을 할 때 준법서약서를 첨부하도록 정해놨다는 것이었어요. 강용주 선생님이 여기까지 온 게 그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겠다는 결단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저희는 준법서약서를 첨부해서 신청을 넣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째로는 ‘법무부가 직권으로 면제를 해야 할 의무가 발동했으니, 신청이 없더라도 면제처분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고, 둘째로는 ‘준법서약서를 첨부하지 않더라도 면제신청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그 후에도 준법서약서 대신에 강용주 선생님의 준법정신과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는 등의 백업을 했구요.

그런데 법에 정해진 처분 기한이 한참 지나도록 법무부가 묵묵부답이었어요. 그래서 결국엔 면제결정 나오기 직전에 부작위위법확인 소송을 냈는데 그게 2018년 11월 28일이에요. 면제를 안 해주는 게 위법하다는 내용이 아니라, 가타부타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이 위법하다는 내용으로 소송을 냈어요. 소송 낸 게 영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2018년 12월 17일 면제결정이 내려졌고, 저희가 낸 부작위위법확인 소송은 취하했어요. 무죄판결 후 면제를 받기까지 거의 1년이 걸린 거죠. 

소송 중에 변호인단이 준법서약서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면제를 앞두고 다시 한번 준법서약서가 문제 될 거라는 예상을 하셨나요? 

그렇죠. 그때 위헌제청 이후에 관련 법을 검토하면서 위헌성 여부를 분석하는데, 준법서약서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죠. 선생님께 이걸 쓰라고 하는 건 그의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이 난관을 타개할까 고민이 깊었어요. 그래서 헌법소원도 생각했어요. 나중에 헌법소원으로 가서 관런 법령 자체를 두고서 더 긴 싸움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각오도 다졌고. 

보안관찰법 재판에 출석하는 강용주. ⓒ연합뉴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강용주를 비롯한 수많은 양심수들이 싸웠던 준법서약제 폐지, 시민사회의 투쟁, 변호인단의 집념으로 결국 폐지를 일궈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2016년 강용주 선생님이 처음으로 체포되셨을 때 저는 1년 차 변호사였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아직도 이런 일이 있지?’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보안관찰법의 뿌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보안관찰법’이라는 이름의 법이 만들어진 건 1989년인데, 제가 태어난 해에요. 저와 함께 나이를 먹은 법인데, 변호사가 되어 다툴 수 있는 2019년이 되도록 이렇게 제도를 지켜왔다는 게 놀라운 일이죠. 

이 사건을 하면서 기자인 지인들에게 왜 과거사 사건을 보도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옛날 이야기여서 잘 안 팔린다”라고 답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옛날 이야기”이기에 더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봐요. 그 옛날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난 거잖아요. 강용주 선생님 관련 칼럼이나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 사람이 아직도 보안관찰을 받고 있는지 몰랐다” “아직도 이런 법이 있는지 몰랐다”라고 말했어요. 이 사건이 우리 세대, 나 같은 젊은 세대 변호사한테까지 넘어온 것에 대해 이 사회가 반성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슈화해야겠죠. 

변호인단에 마지막에 합류한 제가 봤을 때 지금까지 싸워온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환 변호사님, 송소연 상임이사님, 강용주 선생님 이렇게 한 분, 한 분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오신 힘 덕분에 얻어낸 값진 결과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보안관찰 면제 후에 준법서약서 제도 폐지 소식이 가장 기뻤어요. 강용주 선생님의 살아온 방식을 인정받은 거잖아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당신이 불복종한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판단해 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