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난 10월 2일, 페이스북에 <오늘의 노동자 죽음>이라는 새로운 페이지가 생겨났습니다. 익명의 관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지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썼습니다. 메모를 남기는 듯 단순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아카이빙이었습니다.
언론 보도와 함께 노동자의 사망 날짜, 시간, 장소 그리고 노동자의 고용 관계, 외주화 여부, 해당 업체의 노조 유무 등을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성별이나 국적, 지병 유무 등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정보는 쓰지 않습니다.
누가, 왜, 어떻게 이 아카이브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페이지 관리자는 김선해 님은 인권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산재를 둘러싼 제도적, 사회적 관계를 알려내고, 축적하는 목적의 아카이빙이지만, 그 시작은 노동자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로부터 출발이었다고 합니다.
진실의 힘: <오늘의 노동자 죽음> 페이지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선해: 부끄럽지만 저는 처음부터 노동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노동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관심은 여성 차별에 한정되어 있었고, 서로 다른 인권 문제와 연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었으나 페미니즘 운동 이상으로 실천적인 행동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활동에 몰입하면 할수록 페미니즘 자체가 가진 문제의식을 통해 다른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점차 제가 가진 많은 사회적 지위들에 관심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페미니즘 자체가 특정한 인식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절대적으로 신성하다고 주장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부터 여성 노동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차별하는 경제 체제까지 모든 것을 상대화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론 속에서 페미니즘은 공식적인 상황 규정의 무조건적인 수용을 거부하고 현실의 뒷면을 보거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위선을 폭로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오늘의 노동자 죽음> 페이지를 운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김용균 노동자의 부고 소식의 영향이 컸습니다. 우연히 김용균 노동자 사고를 알게 되었고, 평소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는 그 이후로도 하루하루 노동자의 죽음 역시 여성의 것처럼 당연하게 사그라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이나 노동자나 그의 죽음에 대해 사건의 책임 소지는 사라진 채 사건 사실 자체만이 공허하게 남을 때, 누군가는 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보았을 때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서 청년 논객이 되지는 못할 것 같았고, 아직 노동운동 관련해 활동한 적도 없어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다 보니 제가 목도했던 죽음들을 그대로 아카이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실의 힘: 대학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시나요.
김선해: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며 안티 페미니즘 현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노동 문제가 제 연구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까 고민스럽습니다만, 연구 대상을 안티 페미니즘 현상으로 잡게 된 동기와는 아주 조금이나마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특정한 사회적 차별 기제는 다른 사회적 차별 기제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사회적 약자들 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강자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연구하는 것만큼 저는 차별을 재생산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실의 힘: <오늘의 노동자 죽음>이라는 단어의 조합만큼이나 직관적인 것이 있을까요. 지난 11월 21일 경향신문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기획을 보고서 <오늘의 노동자 죽음> 기록이 모이면 저런 형태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김선해: 부끄럽습니다. ‘오늘의’ 다음에 오는 단어는 보통 ‘날씨’, ‘유머(커뮤니티 사이트 이름)’, ‘운세’와 같이 다소 사소하지만, 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보는 일상적인 내용이잖아요. 저 스스로 둔감해질까 두려울 정도로 매일같이 네이버 기사에서 노동자의 부고 소식을 보게 되는데,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했어요. 그래서 <오늘의 노동자 죽음>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날씨와 운세를 보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노동자의 죽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작 저는 이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우울증에 걸려서 <경향신문>의 그 기사를 보지 못했네요.
진실의 힘: ‘김용균’의 죽음 이후 아카이빙을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메시지로 다가왔는지 구체적으로 더 듣고 싶습니다. 저만 해도 2019년 현재, 20대의 젊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서 죽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습니다. 1970년 전태일이 ‘근로계약서를 준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하던 상황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참담함이 밀려 온 것이죠. 김선해 님은 어떠셨나요.
김선해: 처음에는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협착 사고’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저는 사고 내용 자체만으로도 너무 끔찍했고요. 저도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제가 일하는 장소가 곧 죽음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고인의 나이대가 저와 비슷했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는 저와 죽음에 놓인 노동자 사이를 가른 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용균 노동자를 통해 검색창에 ‘협착 사고’를 쳐봤을 때 수많은 사고를 접하고 나서는 ‘왜 이와 같은 참사들이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라는 또 다른 충격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김용균 노동자가 세상이 노동 문제에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다면, 이후로는 청년의 모습에서 벗어난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연계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말씀해 주신 <경향신문>의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라는 기획은 그런 저의 문제의식이 일부 맞닿아 있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의 힘: 어떤 방식으로 아카이빙을 하시나요.
김선해: 이 페이지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애도와 함께 노동자 죽음을 둘러싼 책임 소지 및 사회적 관계를 적시함으로써 다른 활동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카이빙을 할 시 모든 산재 사건에서 노동자의 고용 관계 및 하청업체(협력업체)를 통한 위험의 외주화 유무, 그리고 해당 업계의 노조 유무 등을 게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정보로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숨진 시간(YY/MM/DD)과 장소를 적은 뒤 노동자의 나이를 적습니다. 그 외의 지정 성별, 가족관계, 국적, 지병 유무와도 같은 노동자의 개인적인 정보는 최대한 안 적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고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기도 하고, 노동자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의 사망 소식을 전달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노동자 개인의 정보는 최대한 안 적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소방방재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참고하기도 하지만, 위에서 서술한 정보들은 일반적으로 구글을 비롯한 포털 사이트에 일련의 키워드를 넣으면서 정말 ‘노가다’로 수집하고 있어요. 아카이빙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은 많은 기사가 “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거예요. “노동자”보다는 “근로자/직원”, “근로자”보다는 “작업자”, “작업자”보단 “작업 중”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해야 사자의 정보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개별 기사들을 찾다 보면 그중에 제가 원하는 정보들을 취득하게 되고요.
진실의 힘: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김선해: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과 개인적인 어려움 두 가지가 있었어요. 정보의 부족이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죽음 자체가 기사화가 안 돼서 아카이빙을 진행하기가 곤란한 상황이 많다는 점입니다. 행정안전부, 소방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도 그날 있었던 모든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요. 기사화가 된 죽음도 정말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특히나 요즘 플랫폼 기업을 통해 고용된 배달 노동자들은 교통사고를 많이 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은 산재이기 전에 교통사고로 분류돼서 찾기가 매우 어렵고요.
수적으로도 부족한데 그나마 부고 기사를 발견하더라도 제가 적시하고자 하는 정보는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기사 중 다수가 사고를 당한 이를 “노동자”, “근로자”, “인부”,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작업 중이던 A”로 그리다 보니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 소지는 사라진 채 사건 사실만 남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후 노조를 통해 문제 제기가 된 사건의 경우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해당 사고를 담아낸 게시글의 댓글 창에 제가 빠뜨렸던 정보를 추가, 게시하고 있어요.
다음은 제가 겪은 개인적인 어려움인데요. 고인의 나이가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할 경우, 그가 가진 ‘청년’ 이미지를 강조할 것인가, 고인의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면 그의 출신 정보를 강조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따르는 점이에요. 제가 처음에 김용균 노동자를 통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다수의 사람은 청년의 죽음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다른 죽음 위에 두고 강조하는 행위, 혹은 사자의 개인정보를 상징화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최대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위의 사례는 하나의 예시지만 아카이빙을 하면서 사자에게 예의를 갖추며 명복을 비는 행위와 사자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부각하고자 할 때 이런 종류의 딜레마가 오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죽음을 기사로라도 목도하며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심적으로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