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2021년이 저물어갑니다.
제가 있는 진도는 해돋이와 함께 해넘이도 아름답기로 유명한데요, 저물어가는 나이 탓일까요? 저는 요즘 부쩍 해넘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한 해를 마감하는 이런 마침표마다 ‘오늘 하루는 잘 살았나?’ ‘올해는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나?’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본능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달, 평생 성찰과 반성 없이 시대의 죄인으로 떠난 5.18 학살자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제가 하룻밤에 날벼락처럼 안기부에 끌려간 것은 81년 3월, 정통성을 갖지 못한 전두환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가혹한 고문과 폭력 앞에 처음엔 저도 ‘내가 뭘 잘못했나?’,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자문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되짚어봐도 ‘간첩’이라는 두 글자는 저와 티끌만큼의 연관도 없는 일이었죠.
광주 교도소에 있을 때, 4주 동안 이른바 순화교육이라는 것을 하는데, 교관들이 총구를 겨누고 ‘국가충성 개과천선 사회봉사’ 반성문을 쓰라고 하더군요. 반성할 것이 없는 저에게 반성을 하라고 하는 것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안보용으로 내가 조작간첩이 됐다,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라고 썼습니다. 제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지, 어이없게도 교관이 저에게 표창장을 준다고 해서 거절했습니다.
1998년 광복절을 한달여 앞두고, 대구지검 검사가 준법서약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당시 공안사범들 사이에서 찬반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저는 ”법 안 지킨 전두환·노태우는 준법서약서 받고 출소시켰냐? 왜 우리만 쓰라고 하냐?“ 며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저보다 출소가 빨랐던 제 동생 근홍이는 전두환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가 살던 연희동을 몇 번이나 배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전두환은 치 떨리는 존재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죄를 사죄하지 않고, 역사를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마저 저버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 신문에선 그와 함께 야만의 시대도 마감됐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얄팍한 시대 전환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야만은 한 사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문과 폭력, 조작과 혐오가 사라져야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학살의 잔재, 야만의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데, 어떻게 그 시대가 끝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달, 진실의 힘 이사회에서 ’형제복지원‘등 수용시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와 우리 재단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과 겹쳐져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렇게 국가에 의해서 일그러진 삶들이 진실을 인정 받고, 사과와 화해가 이어질 때, 그때서야 야만의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닐까요?
다가오는 2022년 새해는 그런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새해엔 코로나가 끝나서 우리 진실의 힘 가족들을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2021년 한해를 후회 없이 해넘이 하시고, 2022년 희망찬 해돋이를 맞이하십시오.
글. 박동운 (진실의 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