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서울 가면 춘천에 오주석 선생님 뵈러 갈 수 있을까.”

이사회를 앞두고 박동운 이사장님이 툭하고 말씀하셨다.

지난 봄, 오 선생님이 진도에 들르신 길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소. 나중에 나 간 다음에 문상오지 말고 살았을 때 춘천에 들르시오.” 라고 이야기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박혔던 이사장님 내외분과 임봉택 이사님은 춘천행을 결정하셨다.

진도 일가족 간첩조작 사건의 박동운, 개야도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의 임봉택, 재일동포 방문 간첩조작 사건의 오주석. 이 세분이 감옥살이를 한 시간만 합쳐도 23년이 넘는다. 고통과 혼돈, 억울함과 절망으로 가득 찼던 그 긴 시간 속에서도 선생님들은 진실을 찾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진실을 밝혀낸 그 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사무쳤을까? 그 어둠을 밝힌 빛은 무엇이었을까?

2010년 오주석 김성규 송석민 안교도 선생님 무죄 판결 후 (왼쪽 하단에 계신 오주석 선생님부터 반시계 방향)

바늘 하나도 훔치지 않았는데.... '낙인' 을 이겨낸 힘

춘천의 오주석 선생님댁은 마당 한가운데 있는 큰 단풍 나무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현관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셨던 오선생님은 일행을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으셨다. 오 선생님과 사모님 두 분 다 아흔이 넘으셨으나 정정하셔서 무엇보다 기뻤다.

반가운 얼굴들은 곧 이전의 기억을 향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억울했던 삶이 일상 얘기처럼 탁자 위로 우르르 쏟아졌다. “간첩질 했다고 내 친구고 누구도 다 믿어, 우리 집 사람들이 다 춘천 시장에서 가게들을 하는데 우리 가게에 손님도 못 오게 하고, 문 닫으라고 하고. 고생 많이 했어.” 임 선생님이 곧장 대답했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믿질 않아요. 간첩질 안 했는데 징역 살리냐? 다 그러지.” 누구 하나, 무엇이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위로의 말 하나 없는 서러움의 장이었음에도 앞에 놓인 차는 따뜻했고 과일은 달콤했다.

오 선생님은 아버지가 간첩으로 구속되자 군에 있던 아들이 자결했다는 감옥 동지의 사연을 꺼냈다. 임 선생님이 말을 잇는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잖아요. 아들이 간첩질 해서 구속되었다, 아들이 반공법으로 거시기 한다니께 마음이 아파서 알아볼 것도 없이 그냥 자결해버렸어요.” 오 선생님이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많아요. 낙인이 한 번 찍히면 고칠 수 없는 중병보다도 더해. 멀쩡한 사람도 빨갱이가 되는 거야.” 한참을 말없이 듣고 있던 이사장님은 감옥에서 위안이 되었던 사마천 <사기> 몇 구절을 읊으셨다. 민초를 지배하기 위한 공자의 논리를 반박한 사마천의 글을 곱씹었던 시간이 있었다고, “바늘 하나도 훔치지 않았는데 사형 집행 당하고 감옥 살고. 어떻게 보면 감옥살이는 그런 현인들의 글로 울분을 삭이며 지냈던 것 같소.”

어둠을 밀어낸 빛의 근원

초겨울의 의암호는 거울보다 맑고, 하늘보다 푸르다. 평일 오후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들려오는 대화들이 꽤 즐거운 한낮 춘천의 잔디 위에서 우리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어려웠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겪은 고문과 국가폭력을 직접 드러내고, 세세히 기획된 조작을 밝혀낸 힘이 한 시기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고된 길을 함께 한 동지는 그 지나온 시간의 증거와도 같았다. 첫 진술을 지켜보았고, 무죄의 순간 포옹을 나눴으며, 그와 동반된 지난한 기다림을 견딘 선생님들은 서로가 가장 속 편한 상대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서운한 사람들끼리 해야지, 모르는 사람에게 해봤자 쓸데 없어. 니 설움 이렇다, 내 설움 이렇다 말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요.” 춘천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오 선생님께 개야도 고구마와 김장 김치를 챙겨 보내기 위한 주소를 물으시며.

이런 순간을 지켜본 시간과 힘이 이곳에 모이고 있다. 섣부른 위로를 던지거나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이전엔 설립자 선생님들의 것이었다면 세월을 지나오며 세상 밖으로 손을 뻗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진실의 힘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니 설움 내 설움” 없는 곳이 되길 희망한다. 이번 춘천 방문단의 원정은 다음을 기약하며 멋지게 마무리됐다. 진도, 개야도, 서울, 춘천 사이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김치와 고구마와 닭갈비와, 그리고 이전에 아득하던 어둠을 천천히 밀어냈던 빛의 근원을 슬쩍 엿보면서.

글. 이사랑 (진실의 힘 인권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