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교 UN Human Rights Officer
2003년부터 유엔에서 근무하면서 현재는 제네바 본부에서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특별절차 업무를 맡고 있다. 이 글은 개인의 견해임을 밝힌다.
COVID-19사태가 시작된 이후 유엔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성명과 가이드라인의 서두에는 “전례 없는 위기”라는 표현이 반복되었다.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팬데믹으로 선언된 이 감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직장을 잃고, 인간으로 존엄성과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세상이 멈추었고 누군가는 흔들렸고, 누군가는 무너졌다.
바이러스 자체는 차별적이지 않다지만 그로 인해 개인이 경험하는 사회 경제적 불이익의 차이는 극명하다. 모든 위기의 중심에는 뿌리 깊은 불평등과 차별, 소외가 놓여있기에 질병이 빈곤을 유발하고 빈곤층은 질병에 취약한 악순환이다. 식수도 부족한 22억의 사람들에게 질병예방을 위한 손 씻기는 호사이며, 주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18억의 사람들에게 물리적 거리 두기는 몽상에 불과하다. 스페인 카탈루냐의 가난한 지역 주민들은 부유한 지역의 주민들보다 7배 가까이 높은 COVID-19 감염률을 보인다.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다수는 여성이고 비정규직이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민자 출신 의사가 훨씬 많이 감염되고 사망하고 있다. 동아시아, 유럽, 미국에 이어 의료역량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도 질병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COVID-19에 대한 관심에 “치여서” 더 소외되고 방치되는 다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나 인권침해 케이스도 늘어나기 쉽다. COVID-19는 개인, 공동체, 사회와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며 우리를 일종의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 기구의 수장들과 유엔 인권전문가들은 전례 없는 전염병이 직간접적으로 야기한 인권 문제와 그 해결방안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COVID-19 팬데믹을 선언하기 전부터, 유엔인권최고대표 미셀 바쉘레는 전직 칠레 대통령이자 의사였던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 정부와 의료기관에 놓인 난제를 이해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고려는 차후가 아니라 차선에 놓여야만 궁극적인 위기 대처와 차후 회복이 가능하다’고 호소하였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COVID-19 관련 인권 상황을 국가별, 이슈별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이미 합의된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정리한 지침을 웹사이트(www.ohchr.org)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현재 의료접근권, 장애인, 노인, 젠더, 아동, 인종차별, 사회경제적 파급, 물과 위생권, 주거권, 식량권, 개인정보보호, 정보공유, 경제제재 조치 등 19개 항목의 지침을 제시했고 그중에서도 여성, 이주자, 성소수자, 수감자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발표하였다.
유엔의 인권메커니즘 또한COVID-19 관련한 성명과 가이드라인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COVID-19 위기에서 가중되는 기존의 젠더 불평등과 성폭력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유엔사회권위원회(CESCR)는 개발도상국과 취약층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하는 성명을, 유엔고문방지소위원회(SPT)는 감옥, 이민자수용시설, 폐쇄된 난민캠프, 정신병동 등 수용시설에서 위기 대처 조치에 관한 권고를 내놓았다.
유엔인권이사회 산하의 특별보고관들(Special Procedures)도 연이어 우려를 표했다. 올 3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COVID-19 관련하여 무려 45개의 공개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의료접근권, 인종차별, 성폭력, 가정폭력, 온라인 아동 성 착취, 경제위기, 국가비상사태로 인한 인권침해, 빈곤 심화, 교육권과 주거권 위기, 경제제재로 인한 위기, 수용시설의 취약성, 그리고 장애인, 노인, 이주자, 난민 등의 보호문제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그뿐 아니라 이란이나 북한처럼 경제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COVID-19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인도적 지원을 받도록 경제제재를 일시 중지하거나 완화할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했고, 빈곤층을 위한 즉각적인 재정지원과 장기적 고용 안정책을 펼 것을 각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대다수 성명은 개별 특별보고관이 독자적으로 발표했지만,일부 성명은 다수의 특별보고관이 공동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COVID-19상황이 보건의 위기일 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의 영역에 닿아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응급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3월 26일의 성명에는 특별보고관 대다수인 60명 이상이 참여했다. 그 외에도, 국가비상사태와 질병 예방조치가 인권침해에 악용되어서 안 된다는 3월 16일의 성명이나 N번방 사건 같은 아동 성 착취와 아동폭력에 대한 특별보호를 촉구하는 4월 7일의 성명도 다수의 특별보고관이 공동으로 발표했다.
게다가 유엔 사무총장은 4월 23일 ‘We are all in this together’라는 COVID-19와 인권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감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권에 기반한 접근과 국제 연대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여섯 개의 주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관련 글: http://www.truthfoundation.or.kr/news02/437566]
가이드라인과 성명들을 살펴보면 각 국가의 다양한 상황에 실제 적용하기에는 구체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들은 현존하는 국제인권법 중에 COVID-19와 연관된 조항들을 리마인드하고 강조할 뿐 아니라, 차후 COVID-19 관련하여 피해자나 시민사회단체가 보고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검토하거나 각 국가의 인권상황이 유엔에서 정기심의를 받거나 유엔인권팀이 현장 인권조사를 나갈 때도 사용될 수 있다. COVID-19로 인해 드러나거나 야기된 문제들에 대응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국제인권규범을 적용할지, 어떻게 부작위에 대한 법적책임을 물리고 피해입은 개인을 구제할지, 앞으로 재난을 예방하려면 기존의 규범과 제도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등에 관한 합의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 이 길에서 한국 시민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또 국제사회와 어떤 연대가 가능할까, 실질적인 고민과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