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이 참관기
김민주
내가 그 날 만난 사람은 피해생존자 한종선라기보다는 활동가 한종선이었다. 선생님을 뵙기 전 ‘그것이 알고싶다’, ‘한겨레’ 등의 미디어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을 먼저 접했던 나는 안타까움과 슬픈 마음을 가지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의 숙연한 마음가짐과 달리 선생님께서는 유쾌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셨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겪은 일과 그동안의 느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주셨다. 그러나 감정적 호소를 하기 보다 그에 대한 이성적 대책 마련을 이야기하셨다. 선생님이 털어놓은 고통의 크기와는 대조적으로 선생님의 태도는 차분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했다. 자기연민 없이 초월한 듯한 태도로 덤덤하게 자기 안의 자아들을 관찰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모습에서는 상처 많은 사람 특유의 덤덤함이 느껴졌다.
선생님께서 사회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뒤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편견 어린 시선으로 멸시당했던 일을 들었을 때 그들 역시 피해생존자들을 ‘피해자 서사’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2차 가해를 가하는 공모자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을 법도 한데도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면서 정의를 위해 언어를 배우셨다. 무학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엄청난 성찰을 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단어들이 있었다. 특히 트라우마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고 무심히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선생님께서 겪으셨을 고통의 크기, 그리고 그 후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얻으신 성찰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날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분과 아들을 군대 내 폭력으로 잃으신 분께서도 오셨는데 한종선 선생님께서는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그 분들을 위로해주며 그 분들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픈 기억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때문에 피해생존자들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자신들이 겪은 국가폭력을 세상에 고발하려는 쪽이 있는 반면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덮어두려는 쪽도 있기 때문이다. 마이데이에 오신 피해생존자 선생님들께서도 외압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내분이 더 힘들다고 하셨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고통을 감수하고 갈등도 대처해가며 기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싸워오고 계셨다.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도 누군가와 같이 가면 금새 도착하듯이 선생님들께서 걸어가시는 길에 동행하며 발걸음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