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떠나보내는 씻김굿, 맘풀이
문요한(정신과전문의, 마이데이-맘풀이 진행자)
오늘은 첫번째 <맘풀이> 시간입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시간에 대해 먼저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1995년에 정신과 의사생활을 시작했으니 약 15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동안 정신적으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분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그 분들을 뵐 때마다 한 분 한 분마다 참 힘든 일들을 겪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왜 치료를 받으러 왔는가를 생각해보면 '단지 고통스럽기 때문에'라기 보다는 '고통 속에 혼자있다고 느꼈기 때문에'가 더 큰 이유였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 모이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도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드셨겠지만, 그 고통 속에 혼자 내버려져 있다고 느꼈을 때가 더 힘들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고문과 옥살이로 인한 고통은 물론 세상에 나와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조차 받았던 외면과 냉대가 더 큰 상처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치유가 뭘까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회복해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핵심은 '고통의 재경험'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고통을 이야기하고 치료자에게도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치료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치료가 되는 것은 단지 그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당시 겪었지만 해결할 수 없어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힘든 감정과 마음을 생생하게 다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 그냥 고통을 재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적 관계안에서 과거의 고통을 재경험하기에' 고통이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지지적 관계'입니다.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일 누군가 어둠속에 혼자 틀어박혀 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지는 '빨리 나와봐! 왜 그렇게 있어? 밖이 좋은데' 라는 태도가 아니라 그 어둠속으로 들어가 그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통 속에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함께 있다고 느낄때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지지받고 위로받는 순간입니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집단치료나 일대일 상담을 받아보신 분들도 꽤 많으십니다. 하지만 그 시간만으로 과거의 고통을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맘풀이>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한 분을 정해서 그분이 혼자 겪어야 했지만 미처 떠나보낼 수 없었던 과거의 고통들을 이제 지지적인 사람들과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재경험하고 토로해냄으로써 과거를 떠나보내는 씻김굿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주인공께서 자신의 속깊은 심정을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그 심정을 듣는 관객이시겠지요. 하지만 수동적인 관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쩌면 들으시는 분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만큼은 '왜 그랬을까?' 하고 이해가 안되어 답답해 하시거나 '이래야 하는데' 라고 조언해주는 입장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라도 이야기하시는 선생님 옆에 다가가 앉아서 '그랬구나'라고 받아주고 손을 감싸주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의힘 소식지 제3호(2011.1.5.발행)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