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지 비마이너 기자│
“길을 가다가도 휠체어가 걸리적거린다고 욕하고, 식당에 들어가도 휠체어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고 뭐라 하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저는 단지 지하철을 타는 우리 시민분들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특수학교에서 일반 학교로 전학 가던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오르는데 느리다고 입학을 거부당했다.” (배재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의원)
“세상과 격리된 채 청춘을 보내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중증장애를 가진 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부산 장애인야학 입학식에 참여하기 위해 교사들의 등에 업혀 처음으로 지하철에 타 봤습니다.”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조직실장)
장애인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약속을 기다리며 매일 아침 8시, 경복궁역에서 삭발투쟁을 한다. 비마이너는 이들이 쓴 투쟁결의문 전문을 매일 싣고 있다. 위에 인용한 것은 삭발투쟁한 장애인들이 쓴 결의문 중 일부다. 이들은 결의문에 자신의 온몸에 새겨진 차별의 역사를 쓴다.
21년, 장애인의 자리도, 장애인의 속도도 없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21년 됐다고 한다. 21년은 태어날 때부터 차별당해온 이들이 결집해 이 사회에 저항하고 평등을 외쳐온 역사다. 이 같은 투쟁의 역사가 차별의 역사를 압도하고 있다. 이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며, 차별당해온 몸들이 이 사회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차별의 역사에 당당하게 균열을 내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 균열이라는 게 놀랍게도 그냥 지하철을 타는 일이다. 비장애인 시민이 경악하는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은 이렇게 진행된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서너 명이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 승강장으로 온다. 비장애인 승객을 가득 태운 만원 열차가 들어온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서너 명은커녕 한 명도 탈 자리가 없어 보인다. 장애인 한 명이 이렇게 말한다. “저희 지하철에 타겠습니다. 저희도 출근하겠습니다.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비장애인 승객에게 서둘러 협조를 요청한다. 취재하는 나도 ‘이게 되나? 탈 자리가 생기나?’ 싶었는데, 장애인이 버티니까 되더라. 타겠다고 버티니까 탈 자리가 생겼다.
이 같은 시위 방식에 대해 질문하니 이형숙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비좁은 열차 타면서 눈치 보고, 장애인이라 느려서 죄송하다 말해야 하고,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 텅텅 빈 열차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만원 열차 몇 대씩 보내고 싶지도 않아. 그냥 지하철에 타는 거야. 그냥 타는 거야.”
이게 시위인지 잘 모르겠다. 장애인을 기다리지 않는 사회에서, 비장애인의 빠른 속도에 맞춰진 사회에서,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던 사회에서, 우리가 외면해 온 장애인의 ‘느린’ 속도가 어떤 건지,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보여준 걸 시위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걸까.
장애인은 자신의 자리가 없는 지하철에 탄다. 장애인의 속도로 탄다. 그냥 탄다. 그게 시위가 되고 뉴스가 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인의 시위 방식더러 “비문명적”이라 칭했다. 서울시 전역에 미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대중교통에 타기만 해도 시위가 되고 뉴스가 되는 현실은 장애인에게 ‘문명적’인가.
"욕 먹는 것보다 잊히는 게 두렵다"
장애인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이준석 대표가 이야기하는 ‘문명’에 제동을 거는 일이다. 매일 출근길 아침, ‘문명사회’는 장애인을 제외하고 열린다. 장애인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취재하다 보면 ‘우리를 빼놓고 이 사회를 시작하지 마’ 같은 메시지가 느껴진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빠른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 장애인을 배제한 ‘문명사회’가 열리지 못 하도록 한다. 문명을 가장한 폭력의 사회는 잠시지만 멈춰진다.
잠시지만 멈춰진 20~30분의 시간이 25번 쌓이니 대한민국의 ‘주류 이슈’가 됐다. 21년을 투쟁했는데 이제야 언론들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앞다퉈 보도하고 단독과 속보 경쟁까지 한다. 차기 여당대표가 저격하고 나선 후부터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말을 한다. 방송국 토론회도 잡혔다. 21년간 지하철과 버스, 도로를 수도 없이 점거했는데 출근길 시위 25번 만에 온 세상이 장애인 이동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 승객 모두가 빠르게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간에 시위해서, 다수의 비장애인 입에서 불편해 죽겠다는 경악이 터져 나오고 나서야 사람들이 장애인 이동권이 뭔지 알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은 ‘왜 하필 출근시간에 하냐. 다른 시간에 해라’라는 항의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된다.
이준석 대표와의 일대일 토론을 앞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욕먹는 것보다 잊히는 게 더 두렵습니다. 욕의 무덤에 들어가도 좋으니 장애인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바꿉시다”라고 자주 말한다. 인수위가 약속하지 않으면 장애인은 또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탈 것이다. 또 욕을 먹을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경찰이 매일 채증하니 벌금고지서와 손해배상 청구 소장은 또 날아올 것이다. 통장은 또 압류될 거고, 압류해도 빼내갈 돈이 없어 또 노역투쟁을 할 것이다. 21년간 반복된 일이다. 그래도 잊히는 게 더 두렵다고 한다. 다른 건 다 견디겠다고 한다. 차별사회를 평등하게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 잊히는 게 두려워 차라리 비난받고, 소송당하고, 전과자되고, 감옥가기를 선택하는 삶을 나는 결의해본 적 없다.
장애인들은 인수위에 4월 20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정부가 지정한 시혜적 의미의 ‘장애인의 날’을 버리고 ‘차별철폐’라는 이름을 다시 붙였다. 박현 조직실장에 따르면, 평소에 미용실에 가기가 힘들어서 부모가 집에서 머리를 빡빡 깎아온 게 장애인의 삶이라고 한다. 머리를 맘대로 길러보는 게 소원이었던 이들이 차별에 저항하며 스스로 까까머리가 됐다. 인수위가 약속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4월 20일에 까까머리 장애인들 수십 명이 휠체어를 타고 비좁은 지하철에 우르르 등장할 것이다. 줄지어 지하철을 탈 것이다. 누구도 본 적 없을 이 ‘비문명적’ 광경에 대한민국의 ‘불평등한 문명’을 뒤집을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