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를 기각한다”

지난 9월 16일 남편 동수씨에게 내려진 대법원의 최종 판결문이다.

2019년 5월 13일 응급실에서 사고가 있고 난 후 1년 6개월만의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동수씨의 트라우마 증세만으로도 나와 내 딸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응급실 사건은 우리를 지옥 불에 던져놓은 상황이 되었다. 이해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려 하지만 마음속에 억울함과 울분은 쉬이 사라지지를 않는다.

그날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9년 5월 13일 동수씨는 뉴스를 보다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서로 정쟁만 일삼으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서울로 상경해 국회를 찾아갔다. 일 년 전, 청와대 앞에서 자해를 하고 고생을 많이 했기에, 또다시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는 안산 온마음센터 부소장님과 세월호 활동가들이 소식을 듣고 먼저 와있었다.

담당 의사는 동수씨가 여러번 자해를 해서 상황이 좋지 않다며 보호병동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동수씨는 입원을 해야 한다면,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던 고대안산병원으로 가고 싶어했다. 온마음 센터 부소장님이 나서서 병원쪽 수속을 밟아줬고, 가기만 하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했다. 퇴근시간 인데도 불구하고, 구급차가 지나가자 홍해의 기적처럼 길을 터주는 시민의식에 감탄했다, 몇시간 뒤, 우리 앞에 펼쳐질 일은 상상도 못 한 채.

트라우마 환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병원과 법원

고대안산병원에 도착하자, 딸들이 동수씨를 데리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나는 구급차 운전자와 이송비를 이야기 하느라 조금 늦게 들어갔다. 그런데 응급실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소란스러웠다. 병원 입구 간호사와 작은딸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응급실 구급차 정차 위치가 바뀌었는데 왜 정문으로 들어왔냐며 나무란 것이다. 구급차 운전자에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아무 죄 없는 딸에게 화를 내니 동수씨도 기분이 상했다.

더구나 간호사가 왜 왔냐고 물으니 자해해서 왔다고 말하기가 불편해서, 김동수 쳐보면 알거라고 했는데, 그것도 갈등의 빌미가 됐다. 간호사가 흥분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고, 결국 동수씨 감정이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젊은 남자 의사가 자기가 응급실 책임자인데 왜 이렇게 시끄럽냐며, 소란 피우면 치료 안 해줄테니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나는 남편이 지금 자해를 하고 와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이니 자극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의사는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여 동수 씨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분해서 발버둥 쳤는데, 의사는 자기 복부를 찼다며 경찰을 불러 고소까지 했다. 경찰 다섯 명이 와서 영상을 보더니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입건하겠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동수 씨를 치료하고 입원시키는 것이 우선이라서 그 일은 신경도 쓰지 못 했다. 며칠 후, 안산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의사가 고소를 치하하지 않으면 입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퇴원 후 제주도에 내려오니, 또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의사가 꼭 처벌을 원하니 제주도 경찰서로 사건을 이관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동수씨는 조사를 받고, 검찰로 넘어가 약식 재판 끝에 3,000,000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난 처음에 삼십만원인 줄 알았다. 벌금 판결문을 본 동수씨는 정말 분노의 끝을 보여줬다.

다행히 안산에 있는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해주기로 했다. 1심 3번의 재판 중, 마지막 날은 정말 최악이었다. 코로나로 못 온다던 의사는 사전예고도 없이 증인석에 섰다. 우리 측 변호사가 당황했는데, 그보다 더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법원 직원들이 들이닥쳐 칸막이로 피고인석에 앉은 동수씨를 막았다. 사방이 막히면 불안증세가 심해지는 동수씨는 흥분을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변호사가 동수씨 상황을 설명하자, 판사가 받아들여 장소를 옮길 수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나갈 땐 병원 직원이 자신들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까지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1심에서 벌금 3백만원과 1년 집행유에가 선고됐다. 우리는 항소했고,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도와줘서 탄원서 153통을 법원에 제출했다. 2심에선 벌금 150만원과 집행유예 1년으로 감형됐다.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법원 상고는 기각됐고, 최종 벌금형과 집행유예로 끝이 났다.

김동수님을 주인공으로 한 책 <홀> 북콘서트

세월호 의인을 외면한 트라우마 센터

그때 일을 쓰려니 지금도 손이 떨린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동수씨가 무조건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김동수이기 때문에 특혜를 줘서 죄를 사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동수씨가 그 병원에 오래 입원을 해서 의료진들이 상태를 알고 있고, 그날 자해까지 한 상황이다. 자기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 하는 환자이고, 그래서 병원에 치료받기 위해 간 것이다. 술을 먹은 것도 아니고, 흉기를 든 것도 아닌데, 의사가 환자를 이렇게 몰아세워야만 할까? 무엇보다 세월호 피해자 전담 병원이라는 곳에서 동수 씨를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을 전문 트라우마 센터가 없는 것에서 찾는다. 마음이 아프고 불안해서 응급실에 갔는데, 피검사를 하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건강의학과 담당의를 만날 수 있다. 그 사이 환자는 상태가 나빠지고, 더 불안해진다. 억제대로 손발을 묶인 적도 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응급실 앞을 지날 때면 내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이젠 TV에서 수갑을 채우거나 재판 장면이 나와도 미칠 것 같다.

동수씨는 모두 자기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자책을 한다. 재판 때, 최후 진술에서도 딱 한 마디,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그가 왜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후 그 어떤 기관이나 사람도 동수씨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데, 그는 왜 미안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 7년, 어느새 세상은 지겹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악플을 달고 욕을 한다. 세월호의 고통은 우리에겐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을 놓지 않는 건 동수씨는 죄가 없다며, 여전히 따스한 시선과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글. 김형숙 (세월호 의인 김동수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