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3일 수/ 진실의힘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연출 : 가브리엘 엑설(1987, 덴마크) 원작 : 이자크 디녜선(프랑스)

사랑과 진리는 하나이고, 정의와 평화는 서로 입맞추고......

덴마크의 외딴 바닷가 마을에 마르티나와 필리파라는 늙은 자매가 살고 있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가난한 삶을 살아온 자매는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을 보살피면서 살고 있었다. 자매의 부친은 존경받는 목사님이었는데,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매는 마을 사람들을 이끌며 계속 목사님의 가르침을 그가 살아 계신 것처럼 지켜왔다.

마을 사람들의 삶은 초라한 모습이다. 회색하늘과 침울한 분위기의 마을과 바다, 그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식생활은 초라하다 못해 어쩌면 비참할 정도이다. 이런 환경에서 마르티나와 필리파는 자기 인생의 봄날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아버지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을 본받아 하나님을 섬겨 왔다.

하지만 이들 자매는 한 때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장교와의 연분이 싹텄던 경험도 있었고, 한 때는 파리에서 유명한 오페라 가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수가 될 꿈에 부풀었던 적도 있었다. 특히 마르티나와 연정을 품었던 청년 장교 로렌스가 교인들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나의 친애하는 형제 자매여, 사랑(자비, mercy)과 진리(truth)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의(righteousness)와 평화는 서로 입마춥니다." 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긴다. 그러나 로렌스는 청교도적인 삶의 모습에 지쳐 마르티나와의 사랑을 포기하고 떠난다.

한편 1871년 9월, 바베트라는 여자가 예전에 필리파를 가르쳤던 오페라 가수의 추천장 하나를 들고 자매를 찾아온다. 바베트는 몹시 지쳐 있었고 불안해하고 있었으며 가족도 집도 없는 상태였다. 옹색한 살림에 사람 한 명이 더 늘면 부담이 되었지만, 하녀로 살겠다는 바베트의 간청에 자매는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바베트가 오래전에 사뒀던 1만 프랑(약 220억) 복권이 당첨됐다는 소식이 알려진다. 이제 그녀가 힘들고 불행했던 이 외딴 마을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리라 했던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바베트는 자매의 부친인 목사님 탄생 백주년을 맞아 그 날 자신이 프랑스식 만찬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한다.

만찬을 위해 바베트는 일주일 동안 파리에 나가 고급 포도주와 다양하고 귀한 온갖 요리 재료들을 사온다. 평소 검소한 식생활을 미덕으로 살아 왔던 자매는 그 음식 재료들을 보고 당황하고 긴장하게 된다. 자매는 그 만찬으로 인해 자신들이 엄격하게 추구해온 청교도적 삶이 훼손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교인들과 사전에 상의해서 바베트가 만든 음식은 먹되 그 음식에 대한 어떤 관심이나 평가는 내색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마침내 만찬의 날이 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먼 곳에서 로렌스라는 장군도 참석하게 된다. 그 장군은 오래전 마르티나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마르티나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 살아 왔으나 이제 그도 노인이 된 상태였다. 마침내 만찬이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은 일평생 접해보지 못했던 진귀하고 고급스런 요리들을 맛보면서 깊이 매료되지만, 감히 내색을 하지 못한다. 다만 파리에서 이런 진귀한 음식들을 맛 본 적이 있는 로렌스 장군만이 포도주 한 잔, 음식 하나 하나, 국물 한 숟가락에도 감탄을 연발한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무뚝뚝하게 먹기만 하면서 이따금씩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말만 내뱉을 뿐이다.

그러나 식사가 계속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모두 감미로운 포도주와 미식의 즐거움에 조금씩 젖어 들게 되고 동시에 그들의 마음도 풀어지면서 밑바닥 감정을 열어놓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응어리졌던 마음도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들의 가슴에 감춰 두었던 위선과 거짓, 미움과 질투를 서로에게 고백한다. 이제 사람들은 행복하게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마친다. 그리고 서로 화해한다. 복된 식사와 함께 서로의 사랑을 회복하고 교인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로렌스 장군은 집을 떠나면서 마르티나에게 오랜 사랑을 고백한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 마르티나와 필리파는 바베트에게 너무나도 훌륭했던 오늘의 만찬에 대해 칭찬과 감사를 표한다. 그러자 바베트는 그제서야 자신이 로렌스 장군이 말한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였다는 사실과 함께 하룻밤, 단 한 번의 만찬을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쏟아부었음을 얘기한다. 바베트는 자신이 화려한 세상의 삶보다는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의 소박한 삶, 자신이 가장 불행한 순간 받아들여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