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5일 목/ 진실의힘
<로큰롤 인생>
‘인생은 50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 ‘인생은 80부터’이다. 젊음의 음악으로 치부되는 로큰롤 부르기가 노인들을 삶의 활기로 연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제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신기한 음악 다큐멘터리 ‘로큰롤 인생’(연출 스티븐 원커, 원제는 합창단 이름을 내건 ‘Young@Heart’)이 연말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년간 14개 영화제에 초대되어 관객상을 비롯, 걸출한 상들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 이례적인 화제작이다.
이야기 발단은 미국의 한 구석 노스햄튼 공용주택에 사는 노인들이 점잖은 클래식 노래를 부르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록을 부르면서, 이 합창단은 단순한 여가활용이 아니라 세계 공연에 나서는 유명한 노인 로큰롤 밴드가 되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밥 딜런의 ‘영원한 청춘’(Forever Young), 제임스 브라운의 ‘당신을 가졌어’(I Got You) 같은 히트곡들이다. 노인이 한물 간 인간이 아니라 어떤 노래든 소화할 수 있는 인간임을 알아본 지휘자 밥 실먼의 뛰어난 음악 지도력도 크게 한몫했다.
평균연령 80대 초인 단원들의 절절한 삶과 노래가 겹쳐지는 것이 ‘영앳 하트’의 힘이자 매력이다. 나이들면 피하기 힘든 온갖 질병들, 건망증은 기본이고 폐, 척추, 심장질환을 겪는, 그러니까 온몸이 종합병원이 돼 가는 노년의 삶이 이제 로큰롤로 거듭난다. 노래하다가 병원에 실려가거나 세상을 떠나기도 하지만, 그런 동료를 기리며, 80년이 넘는 자신의 삶의 애환을 담아 신나는 로큰롤을 애절하고 각별하게 부르는 이들은 밥 딜런의 노래처럼 ‘영원한 청춘’이다.
두 줄 이상 가사를 못 외우던 이, 병마에 시달리는 육중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는 이,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음을 걷는 이도 로큰롤을 부를 때면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교도소 위문공연은 재소자와 노인, 그리고 관객의 마음을 하나로 보듬어 안는다. 아프고 외롭고 무료한 노인의 이미지는 이들에겐 없다. 아프지만 자유롭고 순수하게 노래로 인생을 푸는 즐거운 노년의 삶이 스크린에 만개한다. 모름지기 우리는 돈 벌러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살아가는 데서 행복이 온다는 깨달음이 실현되는 현장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하나같이 말한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고. 영화 ‘샤인 어 라이트’,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카페'처럼 올해, 우연이겠지만, 실버음악 명작들이 줄줄이 개봉했다. 이 중에서도 이 영화가 빛나는 것은 음악 청춘의 삶이 프로들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병마와 싸우며 무력하게 늙어가는 모든 이에게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다는 미덕에 있다. 돈 버는 장사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술행위가 인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세계일보 <유지나의 필름포커스> 2008-11-2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