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와 기억할 의무

강 용 주
광주트라우마센터 센터장

2014년 06월 16일(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고귀한 생명들이 292명이나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고, 아직도 12명은 바닷속에 있습니다. 모두 잊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이제 6월 중순, 지방선거가 끝나고 광화문 광장의 브라질 월드컵 응원과 바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차츰 잊어갈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서명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국제사회는 인권 침해의 피해자에게 적용되는 국가의 의무와 피해자의 권리에 관한 원칙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진실을 알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 그리고 배상받을 권리입니다.(‘인권침해자 불처벌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한 일련의 원칙’) 전국의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안전한 나라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0만 명 서명 운동을 진행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일 겁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참담했던 경험이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은 시경의 소비편에서 유래한 ‘징전비후’(懲前毖後) - 지난날을 징계하고 앞날을 삼가다-에서 제목을 따온 ‘징비록’을 씁니다. 자서(自序)에서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란이 일어난 후의 상황을 기록하였고 발단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유성룡은 이 책을 쓴 동기를 말합니다.

“생각하면 임진의 화(禍)야말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십 여 일 동안 세 도읍이 함락되었고 온 나라가 모두 무너졌다. 이로 인하여 임금은 백성의 눈물을 뒤로 한 채 파천하기에까지 이르렀다”고 기록합니다. 서울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조 임금을 향해 “나라님께서 우리를 버리고 가시니 우리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외친 농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 원균의 모함, 조정의 갈등 뿐 아니라 끝까지 용감하게 싸운 사람과 도망간 사람의 이름도 자세히 적었으며 당쟁에 몰두했던 무책임과 무반성의 관리들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우리도 지금 여기서 ‘세월호 징비록’을 써야 합니다. 청해진 해운만이 아니라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이 참사가 일어난 상황과 원인의 진실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피해 당사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진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충분하고 효과적’으로 진실을 알아야만 앞으로 재발을 방지하는 것도 가능해 질 테니까요.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에서만 2606명의 희생자가 나왔을 때, 미국은 사태 발생 원인과 사고 과정을 2년 동안 조사하여 백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족과 시민들이 가진 모든 의문에 대해, 책임 있는 모든 관련자들은 진실에 기반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비극의 원인과 상황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분석을 해낼 때만이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고 죄 없이 죽어간 어린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가 될 테니까요.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보다 더 무서운 게 아우슈비츠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문 생존자들은 고문을 당한 일보다 ‘세상의 낯선 무관심’이 더욱 힘들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가장 두려운 것이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면 ‘진실을 기억할 의무’도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집단적인 기억’을 해야만, 국가가 기억할 의무를 이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억’을 피해자와 그 가족 속에 가둬 두면 안 되는 거지요.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고통이 아니라 함께 넘어서야 할 사회적 고통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집단적으로 ‘기억할 의무’를 지게 되며, 이 ‘기억할 의무’는 잔혹한 행위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일 것입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씨랜드 화재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고등학생 해병캠프 사고, 경주리조트 붕괴 사고, 그리고 세월호 참사. 언제까지 되풀이 되어야만 ‘눈까마스’(이제 그만!) 할까요? 유족들의 참담한 슬픔을 마음속에 새기며 시민의 힘을 모아 ‘알 권리’를 씨줄로, ‘기억할 의무’를 날줄로 진실의 ‘세월호 징비록’을 써야만 합니다.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02844400526359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