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18 경향신문

박주연 기자

국가상대 손배소 시효 6개월···‘국가에 두 번 짓밟힌 사람들’

진도 일가족 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박동운씨
·“간첩죄로 끌려간 뒤 지옥의 18년, 무죄라면서…그때 손배소 시한 알려줬다면 이렇게 원통하진 않을 것”

“대법원의 판결이 있던 날, 사지가 떨리고 정신이 몽롱했어요. 30여년 전 정권의 눈치를 본 잘못된 판결로 죄없는 사람의 삶을 파괴한 사법부가, 지금은 또 다른 방법으로 국민을 기만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지난 2일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자택에서 마주한 ‘2차 진도 간첩단사건’ 피해자 박동운씨(70) 얼굴엔 분노와 원망, 회한이 가득했다. “정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며 그는 자꾸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국가 폭력으로 모든 걸 잃었어요. 그런데 가해자인 국가는 그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네요.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에요.”

온가족이 간첩으로 몰려 18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출소해서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죽은 듯이 산 세월이 28년.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바탕으로 재심을 청구, 그해 11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가는 뒤늦게나마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듯 했다. 하지만 박씨와 가족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은 지난 1월 “56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형사보상결정이 확정된 날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소를 제기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전까지 재심 무죄 확정일로부터 3년을 인정하던 소 제기 시효를 2013년 12월1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자기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줄인 데 따른 판결이었다. 박씨와 가족은 대법원이 제시한 6개월보다 두 달 늦게 소를 제기했다고 배상금을 한푼도 못 받게 된 것이다. 파기환송된 박씨 사건에 대한 고등법원의 선고는 오는 22일 열린다. 그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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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대법원의 선고는 그를 좌절케 했다. 국가에 의해 또 다시 짓밟히는 분노와 충격을 느끼게 했다. 박씨는 “국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대법원이 재심 무죄판결 사건의 손해배상 제기 기간을 ‘형사보상결정일로부터 6개월’이라고 못박았다면 이렇게 원통하진 않을 거예요. 이전까진 3년이라고 했다가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6개월이라니요. 제 경우엔 민사소송에 필요한 아버지에 대한 실종신고를 하고 그 선고가 내려지는데 1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어차피 맞출 수도 없었어요. 법원이 실종선고를 너무 늦게 해줬기 때문이에요.”

-헌법소원을 제기하셨지요. 

“제가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이 아니에요. 저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너무 괘씸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오판을 안 해야 하잖아요. 그들의 오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도 자신들이 잘못한 일에 대해 답이 있어야죠. 박 대통령께도 묻고 싶어요. 과거 당신의 아버지가 사법살인한 피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참다운 정치지도자라면, 또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있는 사법부라면 이럴 순 없는 것 아닌가요?”

오후 4시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시골마을의 어둠은 일찌감치 찾아와 사위는 캄캄했다. 문득 그가 간첩으로 몰리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했다. 작은 아파트와 승용차,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 많이 가지진 않았어도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나이를 먹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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