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아 진실의 힘 이사 │
“개야도를 다녀옵시다”
국가인권위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송소연 이사, 진실화해위원에서 일하고 있는 박성희 (전) 사무국장, 뉴질랜드에서 2년 살기하고 돌아온 한지연 (전) 사무국장, 진실의 힘의 오랜 후원회원인 유현미 작가, 그리고 나까지. 진실의 힘의 오랜 인연들이 함께 뭉쳤다.
군산 앞바다의 작은 섬, 개야도. 누구나 이 섬에 들어가 개간을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풍요로운 섬. 그러나 우리에겐 평범한 어부들을 하루 아침에 간첩으로 내몬 ‘개야도 조작간첩 사건’으로 더 기억되는 곳이다. 이곳에 진실의 힘의 설립자 중 한 분인 임봉택 이사님이 살고 있다.
서해안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2월 6일, 일찌감치 군산에 도착해 전국구 맛집이라는 짬뽕과 빵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로 향했다. 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 소복소복 쌓인 눈밭에서 달려도 보고, 눈 뭉치 던지며 깔깔깔 웃어도 보고, 한참을 놀았다.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선유도. 고군산도의 크고 작은 섬들은 이제 다리로 연결되어 그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이렇게 육지와 이어져 고립되지 않고, 보는 눈이 많았다면 그런 조작과 허위로 가득 찬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무상한 생각이 파도를 따라 밀려왔다 쓸려간다.
파도와 맞선 힘
임봉택 선생님은 언제봐도 기분 좋은 분이다. 희노애락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신다. 말씀에 리듬과 강약이 있고 표정까지 풍부해서 같이 있으면 생동감과 활력이 살아있다. 그 뒤에 쌓여있는 고통의 시간을 알고 있는 우리에겐 선생님의 웃음이 더 고맙고, 귀중하다.
자신이 나고 자라, 꿈을 키우던 고향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간첩’으로 몰았을 때, 임봉택 선생님은 얼마나 절망하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섬으로 돌아와 자신의 진실을 온 몸으로 보여주며 살아온 당신의 힘은 무엇일까?
부인이신 편복희 여사는 이번에도 역시 넉넉한 마음과 맛깔스러운 음식솜씨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꽃게무침, 간장새우장, 한치회, 오징어숙회, 고동쌈장 등등 해물요리를 한 상 가득 차려주시며 무심한 듯 툭 ‘별로 한 게 없네’ 하신다. 그 말이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다.
둥글게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조르르 마루에 누워 잠을 청했다. 진실을 향한 여정이 밥상으로,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 부부는 떠나는 우리들에게 집에 가서 먹으라고 싱싱한 석화를 한아름 싸주셨다. 제철에 제일 맛있는 음식을 맛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다음엔 조개도 캐고, 주꾸미도 잡자고 당부하시는 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십여전 년,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 는 믿음을 실천하는 <진실의 힘>에서 설립자, 이사,활동가, 후원회원으로 만나 이제는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됐다. 군산 앞바다의 아름다운 섬들처럼 서로 이어진 1박 2일! 참 빛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