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 서울지방법원은 김재명, 김시우, 배영수 선생님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1975년 4월 1일 중앙정보부가 대대적으로 선전한 이른바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에 대한 재심재판의 결과입니다.

건국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선후배들인 선생들은 일본에서 유학을 온 김달남과 함께 대학을 다닌 인연뿐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약 한 달 동안 불법 구금과 고문 수사를 통해 “김달남에게 포섭된 간첩”이라고 발표했고, 검찰과 법원은 중정의 발표 그대로 판결했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주범 김달남은 체포된 지 2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한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았지만, 김재명 선생은 10년. 김시우 선생은 5년 형기를 다 채우고야 풀려났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까지 47년이 흘렀습니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김재명 선생님의 소감을 싣습니다.

김재명 국가폭력 피해자│

2022년 1월 21일 서울지방법원 법정.

진실의 힘 식구들은 사무실을 다 비우고 법정에 참석했고 안절부절하던 우리와는 달리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꽃다발까지 준비해왔습니다. “피고인들 모두 무죄”라는 판사의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을 함께 지켜보며 자기 집안 일인 양 기뻐하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우연히도 그날은 일흔세 번째 맞는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제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거죠.

돌이켜 보면 2018년 처음 ‘진실의 힘’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단체를 찾아 창덕궁 옆 낡은 건물, 5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갔던 날, 그날은 내 인생 전환점의 첫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상 앞에 마주 앉은 송소연 이사와 첫 만남.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이렇게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제껏 세상을 별로 신뢰하지 않고 살아왔던 저는 “이렇게 조그만 사무실에 사람 몇 명이 모여앉아서 무슨 힘으로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을 해낸단 말인가?”라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허나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송 이사와 함께 재심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47년 전의 고통을 마주하는 힘

먼저 1975년 2월 중앙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군대를 만기전역하고 대학 4학년에 복학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군대 물이 덜 빠진 저는 중정에 끌려가 ‘수사’를 받은 뒤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생각을 하니 뭐라고 말해야 하나, 너무나 힘든 기억이었습니다. 송 이사는 그 기억으로 함께 들어가자며 저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내디디며 국가기록원, 검찰청 등에서 1975년도 공소장, 중앙정보부 조서, 재판기록들을 찾아냈는데, 그걸 보니 더욱 암담했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기록들을 어떻게 뒤집고 재심에서 이길 수 있을까, 괜한 짓을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암흑과 죽음, 공포의 시간을 걸어 나와야 한다고 용기를 잃지 말자고 다그치는 송 이사가 처음에는 무모해 보인 것도 사실이었죠. 사실 1975년 재판 때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10년 형을 받고 에누리 없이 꼬박 다 살았으니, 진실이 이긴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47년 전 느닷없이 나를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 앉게 만든 중앙정보부, 검찰, 법원과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싸움에서 꼭 한번 이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죄 ... 진실의 힘

진실의 힘 이름처럼 진실은 힘이 있나 봅니다. 조용환 변호사는 기록을 샅샅이 분석해가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대응 방안을 궁리했습니다. 정말 세심했고 완벽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로 꾸며진 검찰의 공소장을 하나하나 뜯어서 왜 그것이 조작인가를 밝혀나갈 때는 당사자인 나도 소름 끼칠 정도였으니까요. 진실에 대한 그 성실한 태도와 우리 같은 피해자들을 대하는 조 변호사의 자세는 감동, 감격이었습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1975년 유신시대에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이 2022년 1월 21일, 무죄라는 승리로 끝을 맺었지요.

그렇다 해서 그동안 온전히 혼자서 겪어야 했던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통과 좌절, 편견과 수모의 세월이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어느 만큼의 응어리가 풀리기는 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셨던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함이 눈물 나도록 아쉽습니다.

지금 저는 이제부터 내게 남은 나머지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합니다. 사건 당시 스물다섯의 젊은이가 벌써 일흔이 넘은 노인이 되어, 기력도 쇠하고 기억력도 멀어지고, 의욕을 못 따라오는 건강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힘닿는 대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으니 나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그 정도는 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9년 12월 16일 저녁, 창덕궁 옆 낡은 건물 5층에서 열렸던 <진실의 힘 송년회>를 기억합니다. 정말 따뜻했던 시간, 진심으로 대해주던 사람들, 다시 그렇게, 함께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