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인터뷰
진실의 힘: 김용균 보고서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김미숙 어머니: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이 원청은 하청을 책임지지 않고, 하청은 자기 공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안전 조치를 내리지 않는 그런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용균이,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이 방치된 환경이 구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었어요. 용균이는 사실 업무수칙을 다 지키다가 죽은 거잖아요. 왜 일은 다 시켜놓고, 책임은 아무도 안 지는 건가요.
보고서에서 내놓은 22개의 권고안을 이행해야만 남은 용균이 동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조국 법무부 장관 이슈만 크게 부풀어 있고 일하다가 억울하게 죽어가고 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어요. 권고안 자체보다도 정부가 어떻게 이행할지가 더 큰 문제인데 이런 건 이슈화하지 않아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정부는 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인지….
정치권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입장이 없다는 느낌이에요. 제가 이렇게 집회 현장을 다니면서 투쟁하는 것도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싶어서예요. 우리가 앞장서지 않으면, 결정권자들은 더 이 문제를 외면하려고 들 거예요. 제가 오늘 발전 비정규직 집회 현장에 나온 것도 그 이유이고.
진실의 힘: 용균 씨가 근무한 현장뿐 아니라 발전소 곳곳에서는 사실 안전수칙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김미숙 어머니: 용균이가 사고를 당한 것도 그저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일했기 때문이에요.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일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당연히 거부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해요. 지금 조선소 같은 현장을 가보세요. 시너를 부어둔 공간에서 용접을 하도록 그냥 둬요. 휘발성 물질인 시너에다가 용접을 하면, 언제 불이 나도 이상할 게 없잖아요. 조선소만 그렇겠어요?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발전소의 건강 및 안전보건 실태조사에서는 위험물질에 대한 지적이 나왔습니다. 석탄 연료 및 회(ash) 분진에는 발암물질인 유리규소 등 휘발성유기화합물에 크게 노출된 환경이었지만 발견됐지만 이에 대한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책도 전무했고요.
김미숙 어머니: 그럼요. 안전장비라고 할 것도 마스크랑 안전모밖에 없어요. 발전소에서는 먼지가 위험하니까 바깥으로 배출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그럼 내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대로 다 마실 수밖에 없어요. 저는요. 발전소 노동자들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고 생각해요.
진실의 힘: 그런데 지금의 외주화 구조를 무너뜨리고 발전사 자회사 중심으로 재공영화한다면 안전사고는 분명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특조위 조사의 결론입니다.
김미숙 어머니: 원청이 하청의 상황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이것만 봐도 알아요. 용균이 사고 후에 경찰이 서부발전에 권고안이라고 내놓은 게 3개월에 한 번씩 현장을 가보라는 거예요. 3개월에 한 번도 현장에 안 갔던 거죠. 그만큼 관리자들이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전혀 모르는 거예요. 노동 관련 법안을 만들 때도 분명 똑같을 거예요. 현장을 모르는 윗사람들끼리 법을 만들어 버리잖아요? 그 법에 노동자는 없어요. 정말 부당하죠.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알아서 따라오라는 식이니…
진실의 힘: 최근 발생했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산업재해 사고 가족들도 만나셨나요.
김미숙 어머니: 만났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가족 중에 조선소 원청이나 또 다른 하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현재 상황에 불만이 있어도 가족 관계 때문에 그냥 묻고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될 수 있으면 말을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덮고 가는 입장이었어요.
진실의 힘: 조선소 밀집한 도시의 특성상 가족들이 같은 직종에서 일하며 원, 하청 구조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고가 나도 남은 가족들의 생계 때문에 쉽게 말하기 어렵고요.
김미숙 어머니: 맞아요. 또 가족이 산재로 문제를 제기하면 같은 업종에서 다시 일하기가 어려워요.
진실의 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사망 등의 중대재해가 아니고서는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우니 그냥 포기하자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존재합니다.
김미숙 어머니: 인터뷰 전에 참석했던 집회에서 한 은퇴한 발전노조원이 본인이 30년 넘게 일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대요. 자기가 어떤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면 원청에서 불이익을 주려는 분위기가 확 느껴져서 아무 말 못 했다고 해요. 그랬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잖아요. 아무도 말 못 하게 만들뿐더러, 개인이 혼자 힘으로 말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고.
진실의 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한 시간이나 비용적인 준비도 필요하지만, 그 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유지도 어렵고요.
김미숙 어머니; 태규(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 용역직으로 일하다가 20m 높이에서 추락사) 누나가 산재 인정을 받으려고 노동청에 갔더니 ‘이것 떼오라, 저것 떼오라’ 하면서 관련 서류를 엄청나게 요구했대요. 결국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몽땅 가서 산재 좀 신청해달라고 말했더니 노동청에서 하는 말이 “간 놈은 간 놈이고, 남은 어른들은 건강을 생각해서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대요. 그 말을 들은 태규 누나가 그 자리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래요. 고용노동부는 될 수 있으면 산재신청하러 온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해서 최소한의 돈만 지급하려고 하는 거죠.
진실의 힘: 그 자체도 억울한데 가족들이 죽음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김미숙 어머니: 맞아요. 설령 가족들이 그 문제에 파고들어서 사고 현장의 사진을 찾아내고, 관련자들의 대화를 녹음해서 증거를 확보해서 경찰에 말한들 ‘조사를 안 해봐서 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와요. 니들은 힘이 없으니까, 밝힐 수 없으니까, 그쯤에서 무마하라는 무언의 강압이 전해져요.
왜 조사를 가족들이 해야 하죠? 유가족이라서 당해야 했던 아픔만으로도 큰데, 유가족이 사고의 원인까지 밝혀야 한다는 게 정말 억울해요. 제가 용균이 죽기 전에는 이런 생각 못 했어요. 그런데 알고 나니까 1년에 수천 명이 일하다가 죽어간다는 거예요. 저만 몰랐다는 것도 너무 억울하고.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저처럼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삶이 바쁘니까.
기업의 이윤을 위해 죽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누구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기업 편에서 서서 눈감아 주고, 사람들을 죽음에 무뎌지게 만들고, ‘몇 명 죽는 것쯤은 괜찮다’는 현실이 김용균 보고서를 통해 바뀌어야 해요.
진실의 힘: 보고서 말미에 나오는 2001년부터 2018년 산재 피해자 목록을 보면서, 발전소에서 이렇게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김미숙 어머니; 그런데도 정부는 산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발표하잖아요. 저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니, 진짜 숫자는 감추고 있다고 봐요. 게다가 자살이나 돌연사도 분명 산재일 텐데 그게 통계에 포함돼 있을까요?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그 주변에 가족들만 세, 네 명은 될 거예요. 그 가족들이 저처럼 아파하거나, 혹은 가정이 깨지는 고통이 있을지도 몰라요. 또 사고 현장을 발견한 동료들은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겪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고통을 겪는 건가요. 그걸 다 눈 감고, 묵인하고 있는 거예요.
보고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발전소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그대로 보여줬어요. 이렇게 열악했나 싶었어요. 우리 용균이가 겨우 석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런 곳에서 밤낮으로 일했구나. 남은 동료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현장에서, 어떤 병에 걸리거나 다칠지 모르고 계속 일하고 있구나. 22개의 권고안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요. 거기 일하는 노동자들 살리려면 이거 꼭 필요해요. 이걸 보고 용균이 동료들도 더 열심히 뛰어다녔으면 좋겠어요. 본인들 눈앞의 현실이잖아요. 제가 이렇게 뛰어다니는 이유가 저를 위해서겠습니까. 어떤 것이든 저절로 주어지는 건 없어요. 우리가 하게끔 만들어야지. 용균이 투쟁도 우리가 만들어서 이뤄낸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