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이라는 빛이 우리에게 남긴 것

조성애 김용균특조위 위원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

첫 직장 출근을 앞두고 새 양복 입고 쑥스러운 듯 웃으며 영상을 찍고, 첫 월급을 타서 엄마에게 화장품을 선물하고, 자신을 위해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를 주문한 내 조카 또래인 김용균. 

이제 사람들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평범한 김용균을 스물네 살 청년 비정규직, 외주화된 위험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노동자로 기억한다. 누가 김용균을 이 같은 비장한 단어 한가운데로 몰아넣었을까? 어두컴컴한 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던 김용균의 죽음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SBS 8뉴스

2018년 12월 10일 밤 10시 40분경, 김용균은 회사의 작업지침서대로 일했다. 낙탄처리1 할 때 유의할 사항은 “벨트 및 회전기기 근접 작업 수행 중에는 비상정지 되지 않도록 접근금지” 였다. 근접작업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는 것을 회사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걱정한 것은 노동자의 안전이 아니라 비상정지장치를 건드려 벨트가 멈추는 것, 발전연료인 석탄을 이송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걱정했다. 노동자들은 비상정지 장치를 건드리지 않고, 벨트 가까이 작업하기 위해 컨베이어가 돌아가는 점검창으로 몸을 넣어서 일을 했다. 그러다 김용균은 죽었다.

김용균과 김용균 동료들은 사고 나기 11개월 전 1월 3일 그 작업에 필요한 물청소 시스템을 원청(발전사)에 요청했지만 2월에 물청소 대신 진공청소 방식으로 개선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시 사고 2달 전 10월에도 물청소 설비가 꼭 필요하다고 재요청했지만, 김용균이 죽는 날까지 개선되지 않았으며, 원청은 하청 사업장에 개선계획 여부도 통보하지 않았다.2 만약 물청소 시스템이 있었다면 김용균은 25번째 생일을 맞이했을까?

ⓒ한겨레

특조위는 왜 두 번이나 요청한 작업개선이 안 되었는지를 확인했다.

이유는 원하청 위계 구조 때문이었다. 설비는 발전사가 소유하고, 운영은 3년마다 계약하는 하청업체가 하다 보니 설비개선 요구가 무시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하청업체는 “내 설비가 아니라 개선할 수 없다” 원청은 지휘, 감독을 하면서도 “너의 사장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책임의 공백 상태로 인한 위험의 방치가 작업을 개선할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

특조위원들이 가본 현장은 광산보다 더 많은 석탄먼지가 날리는 곳이었다. 앞 사람을 쫓아가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정도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그 먼지는 단순히 콧구멍을 까맣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 암을 유발하는 무서운 발암물질 먼지였다. 특히 발전을 마치고 난 석탄찌꺼기(회)의 발암성은 더 높다. 그러나 회사는 제대로 된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았고, 환기시설도 갖추지 않았다. 

일부 노동자의 2013년과 2018년 건강검진 자료를 비교해보니 5년 동안 노동자들의 폐 기능은 10% 정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3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하청노동자, 대정비(발전기를 정지하고 정비 및 청소) 기간에 일용노동자로 들어오는 건설노동자들은 이미 흩어져 버렸다. 특조위가 진행한 작업환경측정으로 발전소가 건설된 이후 한 번도 측정하지 않았던 위험이 확인된 것이다. 더 심각한 건 작년 회처리 작업을 하는 하청노동자가 ‘회’ 성분 분석을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 인터뷰를 통해 위험한 작업환경 개선요청 무시, 위험한 성분 분석요청 묵살, 산재신청에 용역 잘리면 책임질 거냐는 질책, 사고가 나도 119를 부를 수 없어 동료 차량으로 몰래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현장 하청 노동자에겐 인권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방법이 발전소에는 없었다. 심지어 인터뷰 마지막엔 “이건 비밀입니다” “위원님만 알고 계세요” “이거 공개되고 밝혀지면 저는 끝입니다” 이런 요구들이 항상 붙어있었다. 

노동조합과 언론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부로 알리자,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현장이 조금이라도 바뀌는 것을 확인하면 “감사합니다”는 문자를 보내온다. 우리가 요구하니 변한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노동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리면 현장이 바뀔 수 있다는 실천의 결과를 경험하고 있다.

ⓒ한겨레

특조위가 받은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는, “발전소는 위험한 일을 외주화 한 것일까?”“외주화 후 더 위험해진 것일까?”“정규직이 일을 하면 사고는 안 나는가?” 였다. 

결론은 ‘위험’과 ‘외주화’ 둘은 복합 상승작용으로 더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원래 위험한 일을 외주화했다. 정규직이 하던 작업도 정부의 공공부문 인력감축, 발전산업 외주화·민영화 정책으로 하청업체를 만들어 밖으로 내보냈다. 개선과 투자를 통해 안전해질 수 있는 작업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관심 두지 않은 채 점점 더 위험해졌다.

사고 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보고 개선방안 첫 권고는 “CEO 등 경영진의 관심부터 시작, 태안화력발전의 필수 설비인 석탄운송설비는 현 상태로 작업환경의 문제점이 너무 많아 매우 심각한 수준(또한 본사 처장급 중에 석탄설비를 직접 방문한 사례가 거의 없음) CEO 등 간부가 석탄운송설비 현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과제가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 필요, 예시: CEO(반기) 본사 본부장, 처장(분기), 본사 팀장(매월)” 원청의 책임 있는 간부들이 하청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을 잘 모르는 것뿐 아니라, 가본 적도 거의 없기 때문에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개선요구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발전소 정규직, 하청, 자회사 노동자 전체 설문조사 결과, 원청의 재해발생 위험을 ‘1’로 보았을 때 하청은 6.4배 자회사는 5.6배로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3 원청이라고 재해가 안 나지 않는다. 다만 더 투자하고 관리하면, 노동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 재해는 예방할 수 있다.

2018년 12월 10일 이전에도 하루에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가셨다. 이후에도 평균 6명의 노동자가 돌아가신다. 그런데 12월 10일 이후 신문과 방송에서 더 자주 일터 사고를 보도하고 있다. 때로는 심층 보도를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김용균이라는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내 가까운 친구, 조카, 아들, 삼촌의 빛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국민들이 느꼈다. 무서운 공포감을 느꼈다. 이런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지난겨울 함께 외쳤다. 그 힘으로 부족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을 전체 개정하고, 중대재해를 낸 기업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 ‘다시는’을 결성했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지 않는 세상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그러나 “김용균”을 통해 문제가 드러났다. 이제 국민들과 함께 그 문제를 도려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1 낙탄처리 컨베이어로 움직이는 석탄은 이송 속도와 방향 때문에 벨트에서 아래로 탄이 떨어진다. 이를 다시 벨트 위로 올리는 작업을 말한다.
2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종합안전보건진단보고서(2019.1 산업안전보건공단)

3 개인특성(성별, 학력, 나이 등)을 보정하기 전은 1(원청) : 7.1(자회사) : 8.9(하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