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소연 이사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2022년 1월 진실의 힘으로 복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송소연 이사가 설립자 선생님들과 회원님들께 복귀 인사를 드립니다.

송소연 진실의 힘 이사

안녕하세요?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 송소연입니다. 2019년 12월 재단법인 진실의 힘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2년 여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진실의 힘에도 많은 변화가 있음을 실감합니다. 우리 설립자 선생님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마침내 이겼다’는 것이 무엇보다 뜻깊은 일입니다. 말 그대로 사필귀정이지만, 간첩으로 조작한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재판에 이어, 국가 책임을 추궁하는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재심 재판까지, 당연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3년 ‘양승태 대법원’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권리행사 기간(소멸시효)를 6개월로 단축하는 해괴한 판결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궤변이었고, 어떤 악법보다도 나쁜 판결이었지만 대법원이 판결한 이상 피해자들은 줄줄이 패소했습니다. 진실을 향한 설립자 선생님들의 장정이 종착점 바로 앞에서 다시 분노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환 변호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사건을 붙들었습니다. “과거사 사건에 소멸시효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는 한정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패소한 민사판결에 대해 다시 재심을 청구해 승리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소멸시효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까지 받아내며 형사와 민사 두 영역의 재심재판을 동시에 이뤄낸 이 ‘역대급’ 소송의 전개과정과 의미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만큼 대단합니다. 오직 진실을 무기로 고난의 시절을 견뎌내신 설립자 선생님들의 삶에 바쳐진 선물과도 같습니다.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이 소송의 마무리는 진실의 힘에도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진실의 힘 설립 취지대로,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국가폭력과 제도적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재발을 방지하는 일을 지금 이 시대의 눈으로 더 깊이 있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작간첩 진실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을 피해자들과 함께 해왔던 저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숙제(?)를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뜻깊습니다.

사람의 자리를 지키는 일

진실의 힘으로 돌아와 선생님들과 반가운 해후를 하며 미뤄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설립자 선생님들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면서 본질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세상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우리 같은 조작간첩은 다시 생기지 않을 거 같아. 불법적으로 잡아다 고문하는 일은 이제 더 없지 않겠어? 시민들도 더 이상 속지는 않을 것 같고. 그런데도 더 인간적인 사회가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자연의 흐름도 예전 같지 않고,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 거 같아…”

우리 사회에서 ‘간첩’은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 삶은 어디서나 내쫓김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한 노력 끝에 겨우 ‘사람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어렵게 빠져나온 그 자리에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꿀벌을 키우며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선생님들에게 기후변화는 삶의 터전을 허무는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들에 더해,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일터에서 죽고 다치는 사람들의 문제, 코로나 19가 일으킨 재난상황 등등 새롭고 논쟁적인 과제들이 설립자들의 질문에 담겨 있습니다. 그 질문이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연대의 힘

진실의 힘을 만든 고문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새롭게 떠오르는 수많은 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통이 또다른 고통에 귀 기울이고, 슬픔이 또다른 슬픔을 위로하며, 진실이 또다른 진실을 찾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진실의 힘을 만든 이유입니다.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시대, '탈진실 시대'라고 합니다. 생존에 목을 매고 경쟁에 핏발을 세우는 사이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하지만 진실에 목말라 있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진실의 힘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합니다. 진실의 힘은 갈수록 복잡하고 혼돈스런 세상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 연결하고 힘을 모아 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찾아 또다시 길을 나서겠습니다.

진실의 힘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많은 회원들의 지지와 연대로, ‘진실은 인간 존엄성의 근본’이라는 지향점을 잃지 않고 걸어왔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연대의 힘에 힘입어 우리 설립자 선생님들은 이 사회의 엄연한 주인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이 다소 어렵고 복잡하지만 이제껏 함께 걸어왔듯, 앞으로의 길도 함께 걸어가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 또한 언제나 그 자리에서 설립자 선생님들의 뜻을 생각하며, 회원님들과 함께 걸어가렵니다.